백도어 논란이 불거진 중국 선전즈보퉁전자(Zbtlink)의 무선 공유기 제품. <사진=Zbtlink>
[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중국 통신장비 업체가 제조한 무선 공유기(Wi-Fi 라우터) 제품군에서 기기를 임의로 원격 조작하고 내부 정보를 탈취할 수 있는 ‘백도어(비밀 원격접속 통로)’가 발견됐다. 단순 프로그램 오류가 아닌 제조 단계부터 의도적으로 탑재된 것으로 확인돼 전 세계 네트워크 보안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사이버보안 전문 기업 벌른체크(VulnCheck)는 중국 선전즈보퉁전자(Zbtlink)의 무선 공유기 펌웨어 21종을 분석한 결과, 외부로 최고 관리자 권한을 넘겨주는 보안 취약점(CVE-2026-66747)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보안업계는 이 백도어 시스템에 ‘엔드리스 도어스(ENDLESSDOORS, 무한의 문)’라는 이름을 붙였다.
해당 공유기는 전원이 켜지면 사용자 모르게 약 35초마다 중국 내 특정 인터넷주소(IP) 및 도메인으로 지속적인 신호를 전송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통신 상대방을 검증하는 최소한의 인증 절차조차 없다는 점이다. 외부 서버가 명령을 보내면 공유기는 이를 최고 권한인 ‘루트(Root) 관리자 권한’으로 즉시 실행한다.
공유기는 내부망에 연결된 PC, 스마트폰, IP카메라, 네트워크 저장장치(NAS) 등이 외부 인터넷으로 나가는 최일선 관문이다. 해커가 제어권을 쥐게 되면 트래픽 감청으로 웹사이트 로그인 계정과 금융 정보를 빼돌릴 수 있다. 또한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 설정을 강제로 바꿔 피싱 사이트로 유도하거나, 연결된 IP카메라와 월패드에 접근해 실내 영상과 음성을 실시간으로 도청·촬영할 위험도 크다.
기업이나 소호(SOHO) 사업장의 경우 NAS에 저장된 영업 비밀과 고객 데이터가 유출될 수 있다. 특히 저가형 5G·LTE 라우터 형태로 설치된 건설 현장, 원격 기지국, 공공 인프라 시설의 경우 제어망이 마비되거나 분산 서비스 거부(DDoS) 공격용 ‘봇넷’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에 확인된 유통 데이터에 따르면 백도어는 Z8102AX-2DSIM, WG3526, WE826-T3-DSIM, CPE2801 등 Zbtlink가 생산한 최소 20개 이상의 주요 라우터 모델 전반에 적용됐다. 또한 ‘Wiflyer’ 등 제3자 브랜드로 상표만 바꿔 달아 파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도 광범위하게 공급됐다.
벌른체크 분석 결과, 이들 제품은 아마존(Amazon)과 뉴에그(Newegg) 등 미국의 주요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은 물론 알리익스프레스(Alibaba)를 통해 미국 및 글로벌 시장에 대량 판매됐다. 벌른체크 측은 현재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최소 10만 대 이상의 영향받는 기기가 유통되어 실제 작동 중인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미국 내에서는 가정용 외에도 5G/LTE SIM 카드를 사용하는 임시 현장 사무소, 소매점, 원격 제어망 등 소호(SOHO) 및 소규모 기업용 네트워크에 다수 도입되어 작동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대규모 실질 피해 사례가 공식 보고되지는 않았다. 이번 조사는 공격이 대대적으로 감행되기 전 위험 요소를 선제적으로 공론화한 사례다. 다만 백도어가 최소 2년 이상 출하된 펌웨어에 존재해왔고, 기기 내부 접속 기록이 남지 않도록 설계되어 소급 추적은 어렵다.
제조사 측은 사후 서비스(AS)용 기술 지원 도구라고 해명했으나, 논란이 확산하자 관련 펌웨어를 삭제하고 판매를 중단했다.
보안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사용 중인 공유기의 하단 라벨을 통해 Zbtlink, Wiflyer 브랜드 및 언급된 위험 모델명(WE826, WG3526 등)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백도어가 제조 단계부터 심겨 있는 특성상 단순 비밀번호 변경이나 일반적인 설정 조정으로는 위험을 막을 수 없다. 이에 따라 해당 제품을 사용 중인 개인과 기업은 기기를 즉시 네트워크에서 분리하고 타사 제품으로 교체할 것이 강력히 권고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