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미국 신시내티에 거주하는 레베카 월리븐-로슨(74)은 제대로 걷기 위해 척추 수술이 시급한 상태다. 그러나 그는 병원 대신 구직 시장을 먼저 기웃거려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월리븐-로슨은 “월세가 한 번만 더 오르면 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이라며 “파산하지 않고 간신히 버티기 위해 매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성인 자녀와 함께 거주하는 그의 삶은 최근 몇 달 사이 급격히 무너졌다.
그가 노동 시장으로 내몰린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4월 메디케이드(저소득층 공공의료보험) 수급 자격을 상실하면서부터다. 당국은 그의 월 소득이 주 정부 기준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자격 취소를 통보했다. 현재 그의 유일한 수입원은 월 2,065달러의 사회보장연금 및 유족 연금이다.
미국 정부의 정기 연금 인상 조치로 수령액이 소폭 증가했으나, 이는 오히려 독이 됐다. 인상된 연금액이 메디케이드 자격 기준선을 미세하게 넘어서면서 의료 보장이 통째로 박탈됐다. 고물가 속에서 월 2,065달러는 필수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법 제도의 사각지대 앞에서는 ‘과도한 고소득’으로 분류됐다.
이 같은 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유지되던 ‘메디케이드 자격 자동 연장 조치’가 종료되면서 미국 전역에서 속출했다. 이른바 ‘메디케이드 언와인딩(Unwinding)’ 공백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고령층과 취약계층이 저소득층 의료 안전망에서 튕겨 나갔다.
보건의료 전문 싱크탱크 카이저가족재단(KFF)의 최신 통계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종료 후 단행된 메디케이드 재심사 여파로 미국 전역에서 자격을 상실한 수급자는 무려 2,000만 명에서 최대 2,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탈락자 전체의 70%가 소득 기준 초과가 아닌 서류 미비, 통지서 미수령, 마감 기한 초과 등 ‘행정 절차적 사유(Procedural Reasons)’로 인해 보험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자격을 잃은 이들 중 23%는 어떠한 대체 보험도 마련하지 못해 전면적인 ‘의료 무보험’ 상태로 전락했다.
이 같은 공공 의료망 부실화 현상은 조지아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 등 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고령층(70대 이상)에게 더욱 치명적인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KFF의 고령층 설문조사 결과 65세 이상 메디케이드 수급자 중 68%가 자격 재심사 시행 자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을 만큼 노인층의 정보 접근성은 취약했다.
여기에 영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이민 1세대 한인 노인들의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주 정부가 발송한 영어 안내서를 제때 이해하지 못해 서류 미비로 자격을 잃는 사례가 속출하며 통계상의 ‘행정적 탈락’의 주된 표적이 됐다. 조지아주의 경우 일반 메디케이드의 월 소득 제한선이 1인 기준 994달러 수준으로 매우 엄격해,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소폭 인상된 사회보장연금을 받는 한인 노인 대다수가 수급 자격에서 무더기로 제외됐다.
의료 보장을 상실한 한인 노인들이 치료를 포기하거나 비영리 단체로 몰리면서 지역 한인 커뮤니티의 부담도 가중됐다. 메디케이드 갱신과 자격 유지를 돕기 위한 사회복지 기관이나 한인 교회의 긴급 구호 프로그램에는 상담 문의가 폭주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커뮤니티 내부의 재정적·행정적 부하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격이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더라도 즉시 구제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류 누락 등 행정적 문제로 탈락했다면 ’90일 재고려 기간’ 제도를 활용해 누락 서류를 주 정부 담당자에게 재제출함으로써 별도의 신규 신청 없이 자격을 원상 복구할 수 있다. 이 경우 보험 자격은 최초 탈락 시점으로 소급되어 중단 기간 발생한 의료비도 보장받는다.
또한, 연금 인상으로 메디케이드 소득 기준을 근소하게 넘겼다면 연방 정부의 ‘메디케어 비용 지원 프로그램(MSP)’을 대안으로 신청하여 파트 B 보험료와 치료 자부담금을 면제받는 방법이 존재한다. 영어 소통이 힘든 한인 노인들은 혼자 대응하기보다 지역 Legal Aid(무료 법률 실무 단체)나 공인 건강보험 네비게이터 기관의 조력을 받아 공정 청문회를 신청하는 것이 안전망을 회복하는 실질적 통로로 제시된다.
의료 전문가들은 치료가 시급한 고령 환자가 비용 문제로 수술을 미루고 노동을 감행할 경우, 영구적인 신체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회보장연금의 미세한 인상이 저소득층 노인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의료 공백을 야기하는 제도의 모순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