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귀화 이민자의 시민권을 취소하는 이른바 ‘시민권 박탈(denaturalization)’ 절차를 대폭 확대하면서 한인을 비롯해 미국 내 2,600만여 명에 달하는 귀화 시민권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연방정부는 사기나 허위 진술로 시민권을 취득한 범죄자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입장이지만, 법조계와 이민 전문가들은 시민권의 안정성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방 법무부(DOJ)는 2025년 이후 지금까지 약 90건의 시민권 박탈 소송을 연방법원에 제기했으며, 오는 10월까지 이를 최소 250건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시라큐스대 산하 이민자료분석기관(TRAC)에 따르면 지난 5월 한 달에만 15건, 6월 상반기에만 18건의 소송이 새로 제기됐다. 이는 1990년부터 2017년까지 연방정부가 연평균 11건꼴로 소송을 제기해 온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폭증세다. 2008년부터 올해 6월 12일까지 접수된 시민권 박탈 소송을 모두 합쳐도 166건에 불과했다.
이번 확대의 구체적 실행 계획도 속속 드러났다. 국토안보부(DHS) 산하 이민서비스국(USCIS)은 최근 몇 달간 전국 사무소에 전문 인력을 파견하거나 기존 직원을 재배치해, 과거 귀화를 승인받은 시민권자들의 재검토 작업에 투입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목표는 법무부 이민소송국에 매달 100~200건의 시민권 박탈 후보 사건을 공급하는 것으로, 이 계획이 그대로 이행될 경우 연간 최대 2,400건에 이를 수 있어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큰 규모로 평가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위해 전국 80여 개 지역 사무소에 담당 인력을 배치하거나 교육하는 방식이, 과거 캘리포니아주 퍼사디나의 창고 사무실 한 곳에 집중했던 이전 방식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USCIS 측은 “귀화 과정의 사기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유지하며, 거짓말을 하거나 신분을 속인 사람에 대해서는 시민권 박탈 절차를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DHS도 별도 성명에서 “귀화 과정에서 사기를 저지른 사람은 미국 시민권을 유지할 권리를 상실한다”며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시민권을 박탈하고 추방하겠다”고 강조했다.
어떤 사건들인가… 성범죄·마약·테러 연루 등이 다수
실제로 현재 진행 중인 사건 대부분은 성범죄, 마약 유통, 금융사기, 신원 도용, 전쟁범죄 가담, 테러단체 지원 등 중대 범죄와 관련됐다. 지난 6월에는 국토안보부와 법무부가 한 달 동안에만 귀화 시민권자 10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당국은 이들이 아동 성범죄, 마약 밀매, 의료 사기 등 중대 범죄 사실을 시민권 취득 과정에서 숨기거나 허위로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피소자의 출신국은 멕시코가 6명으로 가장 많았고, 쿠바·파키스탄·페루·폴란드 출신이 각 1명이었다.
지난 6월 초에는 법무부가 이민 사기 혐의로 시민권자 17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작전”이라고 자평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아동 대상 성범죄 등 강력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었다. 별도로 쿠바를 위해 비밀리에 활동한 혐의를 인정한 전직 미 외교관 빅터 마누엘 로차의 시민권 박탈 절차도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 “적용 범위 확대 근거 될 포괄적 표현이 문제”
이민법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제기된 개별 사건들 자체는 과거 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가했다. 대부분 시민권 취득 이전의 범죄나 허위 진술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스턴칼리지의 이민법 전문가 대니얼 캔스트룸 교수는 현재 사건들이 기존 사례와 유사하지만, 정부가 훨씬 많은 자원을 투입해 시민권 박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분석했다.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정책의 방향성이다. 법무부는 시민권 박탈 대상에 마약 카르텔 연루자와 민간 사기범 등을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는 한편, “정부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사건” 역시 우선 처리할 수 있도록 지침의 적용 범위를 넓혀 놓았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포괄적인 표현이 향후 대상 범위를 계속 확대해 나가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공개된 법무부 내부 메모에서도 연방 검찰이 국가안보 위반, 정부 사기, 심각한 범죄 전력 등을 시민권 박탈 사유로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져, 법조계 일각에서는 헌법과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시민권 취소, 자동으로 이뤄지지는 않아
다만 시민권 박탈이 행정 조치만으로 즉각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연방법상 시민권 취득 과정에서 신분을 속이거나 범죄 경력을 은폐하는 등 사기나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을 경우에만 정부가 법원에 시민권 취소를 청구할 수 있으며, 최종 판단은 연방법원의 몫이다. 민사 절차의 경우 배심원 재판을 받을 권리나 국선변호인이 지정될 권리는 없지만, 정부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 형사 절차로 진행돼 유죄가 확정되는 경우에는 시민권 취소가 선고의 일부로 자동 부과되지만, 이 경우에는 배심원 재판과 국선변호인 등 형사 절차상의 모든 권리가 보장된다.
다만 민사 절차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점이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정부는 귀화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사건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인 등 귀화 시민권자가 유의해야 할 점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조언했다.
막연한 불안보다는 서류 점검을: 자신이 제출했던 귀화 신청서(N-400)와 관련 증빙 서류 사본을 잘 보관하고, 당시 답변 중 부정확하거나 누락된 부분이 없었는지 미리 점검해 두는 것이 좋다.
정부 통지는 절대 무시하지 말 것: USCIS, DHS, ICE, 법무부 또는 연방법원으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연락이나 통지를 받았다면 즉시 이민 전문 변호사와 상담해야 한다.
셀프 대응은 금물: 변호사 없이 스스로 대응하거나,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거나, 기한을 놓치는 것은 불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반적인 서류 실수와는 다르다는 점 인지: 신청서에 직장을 누락하거나 날짜를 잘못 기재하는 등 단순 실수는, 이전 신원이나 범죄 경력·강제추방 명령 등을 의도적으로 숨긴 경우와는 법적으로 다르게 취급된다. 전문가들은 실제 상담 사례의 상당수가 이런 실질적 문제보다는 오래전에 기각된 체포 기록이나 잊고 있던 서류 문제로 불안해하는 경우라고 전했다.
자동 추방이나 자동 박탈은 없다는 점을 기억: 시민권 박탈은 반드시 법원 판결을 거쳐야 하며, 그 이후 별도의 추방 절차도 필요하다. 다만 절차 자체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어 심리적 부담이 클 수 있다.
영주권자가 시민권 신청 시 유의할 DUI 문제
시민권 박탈과는 별개의 사안이지만, 영주권자들 사이에서 함께 자주 거론되는 것이 시민권 신청(N-400) 단계에서의 DUI(음주운전) 전력 문제다. 이는 이미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이 이를 잃는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시민권을 신청하려는 영주권자가 심사 단계에서 마주치는 문제라는 점에서 시민권 박탈과는 성격이 다르다.
2019년 이민항소위원회(BIA)의 ‘카스티요-페레스(Matter of Castillo-Perez)’ 판례에 따라, USCIS는 심사 대상 기간(신청일 기준 통상 직전 5년, 시민권자 배우자를 통한 신청은 3년) 중 DUI 유죄판결이 2회 이상이면 신청자가 ‘선의의 도덕성(Good Moral Character)’을 결여했다는 추정을 적용한다. 이는 자동 거절 사유는 아니고 신청자가 반대 증거로 뒤집을 수 있는 ‘반박 가능한 추정’이지만, 실무적으로는 거절 위험을 크게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지난해 USCIS는 ‘선의의 도덕성’ 심사 기준을 확대해, 복수의 DUI 전력뿐 아니라 반복적인 교통위반이나 공격적 행위처럼 기술적으로는 합법이지만 ‘시민적 책임에 반하는’ 행동까지 심사 대상에 포함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현 행정부의 전반적인 이민 단속 강화 기조와 맞물린 조치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DUI 전력이 있는 영주권자에게 다음을 강조했다.
오래된 사건이라도 전부 공개: USCIS 정책 매뉴얼은 ‘상습 음주자’를 영구적 결격 사유로 명시하고 있어, 심사 대상 기간(5년 또는 3년) 밖의 오래된 사건이라도 결격 사유로 작용할 수 있다. 체포 기록, 기소, 유죄판결은 물론 기록이 삭제(expunge)된 경우까지 예외 없이 신고 대상이다.
은폐는 DUI 자체보다 치명적: USCIS는 신원조회 과정에서 결국 전력을 발견하게 되며, 이 경우 DUI라는 범죄 자체보다 ‘허위 진술·은폐’ 자체가 선의의 도덕성 판단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증빙 자료 철저히 준비: 법원 기록, 처벌 이행 증빙, 재활 증거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 벌금 납부·보호관찰 이행 확인서, 알코올 치료 프로그램 수료증, 안정적 근무 이력이나 추천서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신청 전 전문가 상담 필수: 특히 DUI가 2회 이상인 경우, 셀프 신청보다 사전 법률 검토를 거치는 것이 권장된다.
전망
이민 전문가들은 개별 소송 자체는 대부분 중대 범죄나 명백한 사기와 관련돼 있어 즉각적인 공포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면서도, 정책의 방향성과 향후 적용 범위 확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