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김선엽 기자] 연방법원의 강력한 이행 명령에 밀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그동안 국가 안보를 이유로 묶어두었던 수천 건의 영주권 및 망명 등 이민 신청서 처리를 결국 재개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행정부의 무차별적인 심사 중단으로 인해 연쇄적인 행정 지연을 겪던 한인 이민 신청자들에게도 간접적인 유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시민권이민서비스국(USCIS)은 로드아일랜드 연방법원 존 맥코넬 판사의 판결을 준수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안젤리카 알폰소-로얄스 USCIS 부국장은 법원에 제출한 서류를 통해 전국 심사관들에게 해당 이민 동결 조치를 “더 이상 효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성공 직후인 2025년 6월, 국가 안보 우려와 외국 정부의 신원 조회 결함을 명분으로 12개국 입국 전면 금지 및 7개국 부분 제한 조치를 단행하면서 촉발됐다. USCIS는 이를 근거로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총 39개국 출신 신청자들의 영주권(신분조정), 시민권, 노동 허가 심사를 전면 동결하는 내부 지침을 시행했다. 이에 더해 국적과 무관한 ‘전 세계 망명 신청 심사 보류’와 2021년 이후 입국자에 대한 기승인 비자 재심사까지 감행했다.
이로 인해 이미 미국 내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며 성실히 수수료를 내고 생체 인식과 인터뷰를 마친 수많은 이민자가 노동 허가를 잃고 불법 체류 신분 위기에 처하는 등 극심한 법적 미궁에 빠졌다. 그린스보로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이민자 사회와 인권 단체들은 즉각 “정부가 합법적인 이민 경로를 불법적으로 차단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을 심리한 로드아일랜드 연방법원의 존 맥코넬 수석판사는 “이민법상 정부는 정해진 기한 내에 신청을 심사할 의무가 있으며, 단지 특정 국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심사를 거부할 권한이 없다”고 판시하며 행정부의 정책을 전면 무효화했다. 정부는 판결 직후 “예비 명령일 뿐”이라며 심사 재개를 미루는 등 버티기에 나섰으나, 맥코넬 판사가 공식 최종 판결을 내리며 “더 이상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즉각 집행하라”고 강하게 압박하자 결국 굴복했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한국 국적의 이민 신청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이민 동결 대상인 39개국에 포함되지 않아 직접적인 제재를 받지는 않았으나, 트럼프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감행한 ‘전 세계 망명 신청 전면 중단’ 조치로 인해 일부 한국인 망명 신청자들 역시 수개월간 심사가 묶이는 불이익을 겪어왔다. 이번 해제 조치로 이들의 법적 불안정이 해소됐다.
또한, USCIS가 특정 국가 출신의 서류 수만 건을 무기한 적체하고 기승인된 이민 혜택을 재심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심각한 ‘행정 병목 현상’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이민국의 인력 낭비로 인해 한국인들이 주로 신청하는 취업 이민(EB-2, EB-3) 및 가족 초청 영주권 심사까지 연쇄적으로 지연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이민국의 행정 자원이 정상화되면서 전반적인 영주권 발급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민 전문가들은 행정부가 법원 명령에 따라 표면적인 심사는 재개하되, 심사관들의 ‘재량권’을 극대화하여 서류 보완 요구(RFE)를 남발하거나 인터뷰를 한층 까다롭게 진행하는 방식으로 한인 신청자들을 압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USCIS 측은 성명에서 여전히 “법원의 명령에 강력히 동의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향후 상급 법원에 항소하거나 집행 정지 신청을 낼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에 따라 합법 이민 심사는 우선 정상화됐으나 가처분 신청 등 향후 사법부의 추가 판단에 따라 이민 정책의 향방이 다시 요동칠 여지는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