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미국 기업들이 2027년 직원 의료보험 비용에서 20여 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인상을 앞두고 있다. 주요 복리후생 컨설팅 업체들이 잇달아 내놓은 조사 결과는 한목소리로 ‘높은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에 가까운’ 비용 급등을 예고하고 있으며, 그 부담의 상당 부분이 결국 근로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 서비스 기업 마쉬가 발표한 ‘2026년 고용주 후원 의료 플랜 전국 설문조사’ 예비 결과에 따르면, 직원 1인당 의료 혜택 비용은 2027년 평균 8.2%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인상이며, 이미 고용주들이 계획 중인 비용 절감 조치를 반영한 수치다. 만약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인상률은 11%까지 오를 것으로 추산됐다. 이번 조사는 1,800개 이상의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2027년 전망치는 2026년의 6.7% 인상에 이어지는 것으로, 5년 연속 이례적으로 큰 폭의 비용 상승이 이어지는 셈이자 이 5년 구간 중 가장 높은 인상률이기도 하다. 마쉬의 미국 헬스·베네핏 부문 책임자 사이먼 카마즈는 “인플레이션을 웃도는 의료비 인상을 어려운 재정적 결단 없이 감당할 수 있는 조직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에이온 “9.5% 인상, 1인당 1만9천 달러 돌파”
비슷한 시기 발표된 경쟁사 에이온의 조사는 한층 더 비관적이다. 에이온은 2027년 미국 고용주 의료비용이 9.5% 오를 것으로 전망했으며, 이는 직원 1인당 평균 비용을 1만9천 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올해와 같은 수준이며, 2025년 9%, 2024년 8.5% 인상에 이어 4년 연속 두 자릿수에 근접한 인상이 이어지는 셈이다.
에이온의 헬스밸류이니셔티브 조사는 1,100개 이상 고용주, 직원 790만 명, 2026년 의료비 지출 1,350억 달러를 추적한 데이터에 기반했다. 고용주가 부담하는 비용 증가율은 2022년 3.7%에서 2026년 8.8%로 두 배 이상 뛰었으며, 2026년 기준 고용주는 여전히 전체 플랜 비용의 82%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 노스아메리카 헬스솔루션 리더 마이크 파스터릭은 “이 정도 수준이 되면 의료비 상승은 단순한 예산 문제를 넘어 인재 채용·유지 전략을 포함한 조직 전반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비용 상승의 배경: 고질적 요인과 새로운 변수
마쉬는 이번 급등의 배경으로 두 갈래의 원인을 제시했다. 첫째는 오래된 구조적 압박 요인들이다. 더 나은 치료 결과를 내지만 기존 치료법보다 비용이 더 드는 진단·치료 기술의 발전, 그리고 소수의 대형 병원 시스템으로의 공급자 통합에 따른 협상력 강화가 대표적이다. 특히 새로운 암 치료제 등 고가 치료법의 확산이 지속적인 비용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는 최근 새롭게 부상한 변수들이다.
① GLP-1 비만·당뇨 치료제 — 마쉬의 계리사들은 GLP-1 약물 사용 증가가 2027년 전체 비용 증가율 중 1%포인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에이온 역시 전문의약품과 GLP-1 치료제 사용 확대를 처방약 비용 상승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했다.
② AI 기반 청구 소프트웨어 — 마쉬는 의사들의 보험금 청구 제출을 돕는 AI 소프트웨어의 “빠른 도입”이 과거보다 더 많고, 더 높은 등급의 청구서 제출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에이온도 “의료 제공자들이 더 상세한 임상 기록과 코딩을 지원하는 AI 등 기술을 도입하면서 일부 사례에서 청구 금액이 높아지는 추가적 비용 압박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③ 연방 ‘노서프라이즈법’ 분쟁 절차 비용 — 환자를 예상치 못한 네트워크 밖 청구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이 법의 독립분쟁해결(IDR) 절차에서, 분쟁 건수와 의료 제공자에게 지급되는 금액이 예상을 크게 초과하며 새로운 비용 요인으로 떠올랐다.
GLP-1 보장, 벌써 줄어들기 시작
비용 압박이 가시화되면서 일부 기업은 이미 GLP-1 약물 보장 축소에 나섰다. 대형 고용주 정책연구단체인 비즈니스그룹온헬스 조사에 따르면, 현재 GLP-1 약물을 보장 중인 고용주의 약 10%가 2027년 해당 약물 보장을 중단할 계획이다. 별도로 실시된 머서 조사에서는 대기업(직원 500명 이상)의 5%가 보장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답했으며, 500명 이상 기업의 44%가 비만 치료 목적으로 이 약물을 보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즈니스그룹온헬스의 다른 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거의 80%가 체중 감량 치료제를 의료비 지출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실제 행동에 나선 사례도 있다. 건강보험사 시그나는 지난 7월부로 자사 직원 대상 체중 감량 치료제 보장을 중단하며, 직원들이 다른 경로로 약을 구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파운다요 등은 제약사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월 149달러부터 시작하는 할인가로 판매되고 있어, 고용주 보장 축소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일부 완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부담
두 조사 모두 비용 상승분이 고스란히 근로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마쉬는 “의료 예산에 대한 압박은 2027년 직원들의 의료비 부담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설문에 응한 고용주의 거의 60%가 내년 공제액 인상 등 플랜 설계 변경을 포함한 비용 절감 조치를 계획하고 있으며, 대기업(직원 500명 이상)의 약 3분의 2는 직원의 보험료 부담 비중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많은 근로자가 급여에서 공제되는 의료 보험료 인상률이 전체 평균(8.2%)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의미다.
에이온 조사에서도 2026년 기준 직원들은 평균 5,297달러(보험료 3,130달러, 본인부담금 2,167달러)를 의료비로 지출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이는 전년 대비 7.9% 늘어난 수치다.
다만 모든 기업이 비용을 근로자에게 그대로 전가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고용주는 특정 의료 제공자 이용 시 비용을 낮게 책정하는 플랜을 도입하는 등 대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대기업의 약 12%(직원 2만 명 이상 기업은 18%)는 2027년 ‘변동 본인부담금 플랜’을 새로 도입할 계획이다.
전망
마쉬, 에이온을 포함한 주요 컨설팅사들의 전망이 일제히 8~9%대 후반의 인상률로 수렴하는 것은, 2027년 미국 기업들의 의료비 부담이 20여 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마쉬의 최종 조사 결과는 2,000개 이상 기업의 응답을 반영해 연말께 발표될 예정이며, 향후 기업들이 GLP-1 보장 축소, 플랜 설계 변경, 근로자 부담 비중 조정 등 어떤 조합의 대응책을 택하는지에 따라 실제 근로자 체감 비용은 달라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