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미국 시민권이민서비스국(USCIS)이 귀화 취소(denaturalization)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식별해 법무부(DOJ)·이민세관단속국(ICE)에 넘기는 내부 기준을 대폭 정비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급증하고 있는 귀화 시민권 박탈 드라이브의 실무 지침을 명문화한 조치로, 시민사회에서는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PA-2026-13” 9월14일 발표, 즉시 시행
USCIS는 지난 9월14일 정책경보(Policy Alert) PA-2026-13을 발표하고 이민국적법(INA) 340조에 따른 귀화 취소 사건 회부에 관한 정책 가이드를 정책매뉴얼(Policy Manual)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은 정책매뉴얼 제12권 중 시민권·귀화를 다루는 파트 L “미국 국적 상실 및 귀화 취소” 부분을 대폭 재구성·확대한 것이다.
해당 지침은 발표 당일 즉시 효력을 발생했으며, 당초 9월25일까지였던 의견수렴 기한은 10월14일로 연장됐다. USCIS 측은 이번 개정이 귀화 취소의 법적 근거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며, 기존의 사건 검토·회부 절차에 관한 지침을 명확히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시민권 취소는 반드시 법원 절차 거쳐야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번 지침이 행정 절차만으로 시민권을 곧바로 박탈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귀화 취소는 민사 소송 또는 형사 재판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형사 사건의 경우 연방검찰이 연방지방법원에 기소하며, 정부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수준(beyond a reasonable doubt)으로 유죄를 입증해야 하고 공소시효는 10년이다. 반면 민사 귀화 취소는 법무부가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하며, “명백하고 확실하며 다툼의 여지가 없는(clear, convincing and unequivocal)” 증거라는 매우 높은 입증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특히 민사 귀화 취소에는 공소시효가 없어, 형사 소추 시한이 지난 오래된 사건도 민사 절차로는 여전히 다뤄질 수 있다.
USCIS는 USCIS의 회부나 조사, 우선순위 지정 자체는 시민권 박탈이 아니며, 취소는 해당 사법절차에서 최종 명령이 내려진 뒤에야 완료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취소 사유: “불법 취득”과 “허위진술·은폐”가 핵심
지침은 민사 취소의 두 가지 주요 근거로 귀화의 불법 취득(illegal procurement)과 중요 사실의 은폐 또는 고의적 허위진술을 제시했다.
- 불법 취득은 반드시 고의적 기만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귀화 당시 영주권으로의 적법한 입국, 거주 요건, 체류 요건, 선량한 품성(good moral character), 헌법 원칙에 대한 충성 등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면 불법 취득으로 간주될 수 있다.
- 허위진술·은폐는 사실의 은폐나 허위진술이 있었고, 그 행위가 고의적이었으며, 해당 사실이 중요했고, 그 결과로 시민권을 취득했을 경우 적용된다. 이는 단순 누락뿐 아니라 적극적인 허위 진술에도 해당하며, 신청서 기재사항, 인터뷰 진술, 제출 서류 모두를 포함한다. 중요성 판단 기준도 낮은 편인데, 해당 정보가 공개됐더라도 반드시 시민권 취득을 막았을 것이라는 증명 없이도,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경향”이 있었다면 중요한 사실로 간주될 수 있다.
이 외에 귀화 후 5년 이내에 귀화 자격을 박탈했을 단체에 가입한 경우나, 2003년 11월23일 이후 군복무를 근거로 귀화했으나 명예제대 5년을 채우기 전에 불명예 전역한 경우도 취소 사유로 명시됐다.
국가안보·중범죄 사건 우선 회부
지침은 ICE에 우선 회부할 사건 유형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테러·간첩 등 국가안보 위협, 중대한 공공안전 우려, 고문·전쟁범죄 등 인권침해, 범죄조직·초국가 범죄조직·마약 카르텔, 인터폴 수배 관련 사건이 포함된다. 또 귀화 과정에서 공개하지 않은 중범죄 전력, 인신매매, 성범죄, 강력범죄, 금융사기, 개인·단체 대상 사기, 공직 부패, 중요사실 허위진술 관련 사건도 우선순위에 오른다. 허위 신원, 미국 시민권 허위 주장, 귀화 전 연방 선거에서의 불법 투표, 위장결혼도 우선 회부 대상으로 명시됐다.
ICE가 회부를 거부하거나, 형사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민사 취소로 다뤄야 하는 경우 USCIS는 법무부 이민소송국(Office of Immigration Litigation)에 직접 사건을 넘길 수 있다. 사건 식별 과정에서는 체포기록, 법원 판결문, 녹취된 인터뷰, 선서진술서, 혼인·이혼 기록, 단체 가입 서류, 소셜미디어 계정, 언론보도, 출입국 서류, DNA·생체정보 대조 결과 등 광범위한 자료가 검토된다.
취소되면 배우자·자녀까지 영향 가능
법원이 실제로 귀화를 취소하면 그 효력은 원래 귀화한 날짜로 소급 적용되며, 당사자는 시민권 취득 전 체류 신분으로 돌아간다. USCIS는 이후 관련 기록을 갱신하고 ICE, 국무부 등 관계기관에 통보하며, 당사자는 귀화증명서를 반납해야 한다. 파장은 본인에게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 해당 귀화를 통해 시민권을 취득한 배우자나 자녀의 시민권도, 그 취소 사유가 중요사실 은폐·허위진술일 경우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불법 취득이 사유인 경우에는 적용 방식이 달라진다.
배경: 트럼프 2기 들어 귀화 취소 목표치 대폭 상향
이번 지침 정비는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2026회계연도 중 USCIS 현장사무소들에 매달 100~200건의 귀화 취소 사건을 법무부 이민소송국에 넘기라고 지시하는 내부 지침을 내렸다. 이는 2017년부터 2025년까지 8년간 제기된 귀화 취소 소송이 120여 건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증가폭이며, 목표치대로라면 연간 최대 2400건에 달할 수 있는 규모다. USCIS 대변인은 “귀화 과정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신원을 속인 사람들의 귀화 취소를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실제 집행 속도는 목표치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NPR이 지난달까지 공개적으로 확인한 사건은 34건(그중 실제 시민권 박탈 11건)이며, 보스턴칼리지의 이민법 전문가 대니얼 칸스트룸 교수는 “우려할 만한 수준의 대규모 증가는 보이지 않는다. 비상사태로 볼 수준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지난 16개월간 제기된 건수는 바이든 행정부 4년 전체(64건)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법무부는 집계하고 있다.
시민단체 “위축 효과” 우려…소송도 제기
확대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민주주의포워드재단(Democracy Forward Foundation)이 정보공개법(FOIA)에 따라 행정부의 내부 계획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며, 이는 법무부가 같은 달 17명을 상대로 귀화 취소 소송을 제기한 시점과 맞물려, 변호사들과 시민권 단체들은 이러한 증가세가 이민자 사회에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메시지가 귀화 이민자를 미국 태생 시민과 분리된 별도 계층으로 취급하는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법률 전문가들은 절차적 위험성도 지적한다. 귀화 취소는 형사가 아닌 민사 절차이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변호인 선임권이 보장되지 않고, 정부의 입증 책임도 형사재판보다 낮다는 점에서 적법 절차(due process) 침해 우려가 제기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나
USCIS는 이번 지침이 수백만 귀화 시민이 자동으로 시민권을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취소 근거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또한 귀화증명서 자체가 부정하게 발급된 경우의 ‘증명서 취소’와, 적법하게 귀화한 사람의 ‘시민권 취소’는 법적으로 구분된다고 명시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귀화하고 선서까지 마친 사람은, 법적 절차를 통해 시민권이 취소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미국 시민이라는 점도 재확인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1월 바이든 행정부의 78개 행정명령·메모를 폐기한 행정명령 14148호 등과 연계된 것으로, 공공의견 수렴은 10월14일까지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