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미국 경제방송 CNBC가 지난 9일 발표한 ‘2026년 전미 기업하기 좋은 주(America’s Top States for Business)’ 조사에서, ‘삶의 질(Quality of Life)’ 부문 최하위 10개 주가 모두 공화당 지지 성향의 남부·중서부 주로 채워졌다. 20년째 이어온 이 연례 조사는 138개 지표를 활용해 10개 경쟁력 부문에서 50개 주를 평가하는데, 그중 삶의 질 부문은 범죄율, 대기질, 의료 접근성, 보육 여건, 법제도의 포용성, 재생산권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올해는 이 부문의 비중이 전체 점수의 약 10%에서 11.6%로 확대됐다.
삶의 질 점수가 가장 낮은 주는 테네시(64점)였다. 뒤이어 텍사스(78점), 인디애나(82점), 루이지애나(89점), 조지아(89점), 유타(95점), 미주리(98점), 앨라배마(99점), 오클라호마(103점), 아칸소(103점) 순으로 최하위 10곳이 구성됐다.
테네시는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이른바 ‘배스룸법’, 지방정부의 독자적 차별금지 조례 제정을 막는 법률, 전미 최고 수준의 강력범죄율과 약물 과다복용 사망률 등이 발목을 잡았다. 텍사스는 무보험자 비율이 16.7%로 전미에서 가장 높고 이는 전국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인구 대비 1차 진료의사 수는 전미 꼴찌였다. 다만 보육과 대기질은 텍사스의 강점으로 꼽혔다.
텍사스, “기업하기엔 좋지만 살기는 어려운 주”
역설적인 점은 텍사스가 ‘삶의 질’ 부문에서는 최하위권이면서도, 종합 순위에서는 전체 4위(1위 오하이오)에 오를 만큼 기업 유치 경쟁력이 높다는 사실이다. CNBC 조사에서 텍사스는 노동력(Workforce) 부문 전미 1위, 경제(Economy)와 자본접근성 부문 각각 2위를 기록했다. 법인세와 개인소득세가 없고, 사업비용 부문도 5위로 상위권이다.
CNBC는 텍사스 관련 기사에서 “텍사스는 계속해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끌어들이고 있지만, 정작 그렇게 유입된 노동자들은 도착한 뒤 광범위한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구도의 배경에는 낮은 최저임금과 약한 노동자 보호가 있다. 텍사스를 포함한 상당수 하위권 주들은 연방 최저임금인 시간당 7.25달러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으며, 유급 병가 의무화나 성희롱 방지 관련 법제도 등 기본적인 노동자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앨라배마는 성별·인종에 따른 동일임금 의무화, 급여 이력 조회 제한 등 옥스팜(Oxfam America)이 꼽은 16개 핵심 노동자 보호 지표 중 단 2개만 충족했다.
“저비용·저규제로 부자가 된다”는 통념, 데이터와는 다르다
‘사람과 기업에 부담을 덜 지우면 지역이 부유해진다’는 통념과 달리, 삶의 질 하위권 주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미국 경제분석국(BEA) 자료를 보면, 2025년 기준 실질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곳은 웨스트버지니아와 미시시피로, 두 주 모두 4만 8천 달러를 밑돈다. 이번 삶의 질 최하위 10곳에 포함된 아칸소, 앨라배마 역시 1인당 GDP 하위권에 속한다. 특히 아칸소는 이번 CNBC 조사에서 ‘가장 개선이 큰 주’로 꼽혔음에도, 가구의 19%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지 못해 식량 불안정 지표 전미 꼴찌를 기록했다.
반면 1인당 GDP 상위권 주들은 대체로 삶의 질 지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2025년 기준 뉴욕, 매사추세츠, 워싱턴, 캘리포니아 등 4개 주는 실질 1인당 GDP가 8만 5천 달러를 넘어섰다. 이 중 뉴욕은 금융·전문서비스 중심 경제로, 매사추세츠는 첨단기술·바이오·고등교육 중심 경제로 각각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이번 순위 발표 이후 정치권에서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 소속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소셜미디어에서 “테네시가 정말 최악의 주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오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순위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텍사스, 테네시, 조지아, 유타 등은 순위와 별개로 미국 내에서 인구 유입이 가장 빠른 주에 속한다. 낮은 생활비와 소득세 부재가 이주를 유인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이런 반박이 ‘삶의 질 지표 자체가 틀렸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인구 유입은 주로 주거비 등 ‘생활비’ 요인에 좌우되는 반면, CNBC의 삶의 질 지표는 범죄, 의료 접근성, 노동자 보호 등 다른 차원의 문제를 짚고 있어 두 지표가 상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가 보여주는 그림은 명확하다. 낮은 최저임금과 약한 노동자 보호, 지방정부의 임금 인상 권한을 제한하는 주법 등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 주들이 실제로 기업 유치 경쟁력 순위에서는 상위권에 오르지만, 그 주민들의 삶의 질은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이런 정책이 지역을 실질적으로 부유하게 만들었다는 증거도 뚜렷하지 않다. 반면 노동자 보호가 강하고 최저임금이 높은 뉴욕·매사추세츠·워싱턴 등은 1인당 GDP와 삶의 질 지표 모두에서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