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미국 주요 유통업체들이 지능화하는 매장 범죄뿐 아니라 고객의 악성 폭언과 공격 행위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인력 유지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 노동자에 대한 안전 위협이 스트레스와 이직을 부추기며 기업의 비용 부담을 키우자, 업계에서는 무조건적인 고객 우대에서 벗어나 직원 보호를 우선하는 강경 대응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National Retail Federation(NRF)과 Loss Prevention Research Council(LPRC)이 지난 7월 발표한 ‘The Impact of Retail Theft & Violence 2026’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66개 소매기업은 2025년 매장 내 shoplifting 사건이 전년보다 평균 12.4% 감소했고 상품 절도도 8.1% 감소했다고 답했다.
문제는 전체적인 절도건수는 줄었지만 범죄 양상은 오히려 더 지능화했다는 점이다. 응답 기업의 50%는 반복 범죄자 활동이 증가했다고 답했고, 40%는 조직적 소매범죄(ORC) 관련 사건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상품을 들고 계산하지 않은 채 매장을 빠져나가는 walkout·pushout 절도도 37%의 기업에서 증가했다.
한편 범죄는 디지털 영역으로도 이동했다. 전화 사기 증가를 경험한 기업은 69%, 로열티 프로그램 사기 증가는 51%, 기프트카드 절도·사기 증가는 42%에 달했다. NRF는 ORC 조직들이 전화 사기, 기프트카드 사기, 화물·공급망 절도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물리적 매장과 온라인 환경을 동시에 공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미국 소매업계의 범죄 문제는 단순한 ‘좀도둑 증가’라기보다 조직적·디지털 범죄로 수법이 진화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상품을 훔치는 범죄와 별개로 현장 직원들이 직접 겪는 문제도 심각하다.
HALOS가 3Gem을 통해 미국과 영국의 frontline worker 2,500명을 조사한 ‘Not Part of the Job: 2026 Frontline Worker Safety Report’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7%가 최근 4주 동안 자신이 고객의 폭언·공격을 경험했거나 동료가 겪는 것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또 86%는 고객 공격으로 스트레스나 불안이 증가했다고 답했고, 66%는 고객의 공격적인 행동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39%는 고객 공격이 직업의 일부처럼 취급된다고 답했다.
미국 응답자만 놓고 보면 문제는 더욱 뚜렷하다. 약 40%가 지난 12개월 동안 고객 공격성이 증가했다고 답했고, 80%는 직업 만족도가 낮아졌다고 밝혔다. 37%는 자신이나 동료가 고객 공격 때문에 휴가나 결근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신고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회사의 대응에 대한 불신이다. HALOS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67%는 회사에 고객 공격 사건을 신고할 수 있는 명확한 절차가 있다고 답했지만, 심각한 사건을 신고한 뒤 실제 후속 조치를 받은 사람은 14%에 그쳤다. 35%는 신고 절차가 너무 오래 걸린다고 답했고, 42%는 사건이 결국 ‘누구 말이 맞느냐’는 문제로 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7%는 신고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응답자 가운데서도 55%만이 고객 공격 신고가 의미 있는 조치로 이어진다고 답했다. 이는 고객 공격을 경험한 직원들이 사건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게 만들고, 기업 역시 반복적인 위험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DICK’S가 바꾼 것은 ‘고객 만족’의 기준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사례가 DICK’S Sporting Goods다. 회사는 과거 고객과 직원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면 직원이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고객에게 사과하고, 직원을 상황에서 빼낸 뒤 고객을 최대한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회사가 자신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고 느꼈고, 회사는 정책을 바꿨다.
2024년 공개된 SHRM 인터뷰에서 Julie Lodge-Jarrett 당시 최고인사책임자는 관리자가 갈등 상황에 개입하되 먼저 직원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고, 폭언이나 모욕적인 행동이 계속되면 고객에게 매장을 떠나도록 요청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설명했다. 핵심은 고객의 정당한 불만을 해결하되 직원에 대한 폭언과 모욕까지 서비스의 일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 같은 변화가 매장 내 상호 존중 문화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보디캠·안전기술도 확산
소매업체들은 관리자와 직원 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보디캠 등 안전기술도 도입하거나 시험하고 있다. NRF 조사에서는 소매기업의 72%가 관리자 교육, 65%가 직원 교육, 61%가 위험정보·보안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고 답했다.
Walmart에서는 일부 매장에서 직원 보디캠을 시험해 온 사실이 보도됐고, 2026년에도 일부 매장에서 직원들이 보디캠을 착용하고 있다는 사례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다만 Walmart·Target·Kroger 등이 특정 보디캠 업체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은 각 기업의 공식 확인 여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보디캠은 절도나 폭력 상황을 기록하는 동시에 직원과 고객 모두에게 행동이 기록될 수 있다는 신호를 제공해 공격적인 행동을 억제하고, 사건 발생 이후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연방정부도 ORC 대응 강화 추진
조직적 소매범죄에 대한 연방 차원의 대응도 진행되고 있다. Combating Organized Retail Crime Act(CORCA)는 지난 5월 12일 하원에서 348대60으로 통과됐다. 법안은 연방·주·지방 법집행기관과 민간기업의 정보 공유를 강화하고, 국토안보부(DHS) 내 조직적 소매·공급망 범죄 대응센터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아직 법률로 제정된 것은 아니다. 하원을 통과한 뒤 5월 13일 상원으로 넘어가 상원 법사위원회에 회부됐으며, 7월에는 법집행기관과 유통업계가 FY2027 국방수권법(NDAA)을 통한 처리를 촉구했다. NRF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94%가 조직적 절도 조직을 차단하기 위한 연방 차원의 지원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뉴욕은 ‘직원 안전’을 법으로 강화
일부 주에서는 이미 소매 직원 안전을 법제화하고 있다. 뉴욕주의 Retail Worker Safety Act는 직원 10명 이상을 고용하는 소매업체에 직장폭력 예방정책과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2027년 1월 1일부터는 뉴욕주 내 소매 직원 500명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주가 직원들에게 긴급 상황에서 관리자나 보안요원을 호출할 수 있는 silent response button을 제공해야 한다.
뉴욕 노동부는 올해 6월 법 시행 1주년을 맞아 수백 개 소매점을 대상으로 관련 법규 준수 여부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도 직장폭력 예방 관련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으며, 2026년 1월에는 노스캐롤라이나 노동부와 North Carolina Retail Merchants Association이 소매업계의 직장 안전과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결국 기업이 지켜야 할 것은 ‘상품’만이 아니다
현장 직원 유지 문제도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Josh Bersin Company와 UKG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노동력의 약 80%가 frontline worker이며, 이 가운데 75%가 번아웃을 경험한다고 답했다. 또 직원 유지율을 단 1% 개선해도 비용·교육·성과 측면에서 최대 100배에 달하는 절감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고객 공격 문제를 단순한 보안비용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직원이 폭언과 위협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회사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결근과 사기 저하, 이직으로 이어질 수 있고, 기업은 다시 채용과 교육에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미국 소매업계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분명하다. 매장 내 절도는 일부 감소하고 있지만 범죄는 더 조직적이고 디지털화되고 있으며, 동시에 고객의 폭언과 공격은 직원 안전과 인력 유지 문제로 번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소매업체의 경쟁력은 도난 상품을 얼마나 줄이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직원이 위협을 받았을 때 관리자가 즉시 개입하고, 신고가 실제 조치로 이어지며, 필요한 경우 보디캠·긴급호출 장치·교육 등으로 직원과 고객을 함께 보호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미국 소매업계의 새로운 질문은 이제 ‘도둑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서 ‘직원과 고객 모두가 안전한 매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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