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은 기억하되 과오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프롤로그
애틀랜타 한인사회가 또 하나의 뜨거운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논쟁의 쟁점은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애틀랜타 한인회관에 세우는 문제다.
동상 건립을 추진하는 측은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한미동맹, 그리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과 한국전쟁 당시의 역할을 기념하고 추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이승만과 맥아더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인가?”가 아니다.
그문제는 이미 역사학의 영역에서 충분히 논의되어 왔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그토록 평가가 엇갈리는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을 애틀랜타 한인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한인회관에 세우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이다.
나는 이 질문에 신중하게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승만의 공적만 기억할 것인가?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공적을 애써 부정할 까닭은 당체 없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그의 역할은 분명히 중요했고,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했으며, 한국전쟁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의 공적만 골라 기억하는 행위가 되어서는천만부당한 일이다.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행적에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할 대목들이 존재한다.
1954년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은 초대 대통령에 대한 중임 제한을 폐지했다. 국가기록원은 당시 개헌이 헌법상 필요한 의결정족수를 무시한 위헌적·불법적 개헌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에게 장기집권의 길이 열렸다.
더 심각한 문제는 1960년 3·15 정부통령선거였다.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는 기록에는 당시 자유당 정권이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의 당선을 위해 사전투표, 공개투표, 완장부대 동원, 야당 참관인 축출 등을 포함한 부정선거 계획을 수립·시행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러한 부정선거는 결국 국민들의 광범위한 저항과 4·19혁명 으로 이어졌고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자유당 정권의 붕괴를 가져왔다.
이 사실을 말한다고 해서 이승만의 모든 공적을 부정하는 것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 역사를 제대로. 관조하고 기억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건국의 공로가 있었다면 그것을 기록하면 된다.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했다면 그것 역시 그대로 기록하면 된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훼손한 과오가 있었다면 그것도 빠짐없이 기록해야 한다.
역사는 기념사진이 아니라 전체를 담은 기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맥아더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전세를 크게 변화시킨 중요한 군사작전 이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 맥아더의 이후 모든 전략적 판단까지 옳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1950년 10~11월 중국군의 본격적인 개입 가능성을 둘러싼 판단은 오늘날까지 중요한 역사적 논쟁의 대상이다.
미국 정부 내부에서는 이미 1950년 10월 중국군의 군사개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었고, 합동참모본부 역시 맥아더에게 관련 지침을 전달했다.
그러나 11월 4일 맥아더는 당시 상황에 대한 중간 평가에서 중국군의 전면적인 개입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이후 미국 정부의 정보평가는 중국군이 이미 상당한 병력을 투입했고 유엔군의 북진을 저지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중국군의 대규모 개입으로 유엔군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전쟁은 새로운 장기전 국면으로 들어갔다.
맥아더의 또 다른 중요한 논쟁은 전쟁 확대 문제 였다.
맥아더는 중국과의 전쟁을 확대하는 전략을 주장했지만 트루먼 행정부는 한국전쟁을 제한된 전쟁으로 관리하고 더 큰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1951년 4월 맥아더 해임을 설명하면서 아시아에서 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것이 미국 정책의 중요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 당시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맥아더의 해임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측면에서도 그를 교체해야 한다는 판단을 만장일치로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나 한국전쟁에서의 역할을 부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이라는 이유만으로 맥아더의 모든 전략적 판단을 역사적 진실처럼 기념할 수는 없다.
동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우린 이 지점에서 동상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책이나 역사교과서에 이승만과 맥아더의 공적과 과오를 함께 기록하는 것과,
우리 동포들이 함께 소유하고 사용하는 한인회관 현관 앞에 두사람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동상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그 사회가 누구를 기억하고, 누구에게 존경을 표시하며, 다음 세대에게 어떤 역사적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더구나 한인회관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이념을 대표하는 시설이 아니다.
민주당 지지자도, 공화당 지지자도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동포도,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동포도 편견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6·25 참전용사의 가족도, 4·19혁명을 기억하는 세대도, 민주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도 모두 함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그곳에 세워지는 영구적인 조형물 역시도 가능한 폭넓은 동포사회의 합의와 동의를 바탕으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동상을 반대한다’와 ‘역사를 부정한다’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분명히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이승만·맥아더 동상을 한인회관에 세우는 것에 반대한다고 해서 그들의 역사적 공적을 부정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이승만을 연구할 수 있다.
맥아더 또한 연구할 수 있다.
두 사람의 공적을 기념할 수도 있다.
심지어 별도의 역사관이나 기념관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공동체의 공공시설에 특정 역사관을 상징하는 영구적인 동상을 설치하는 문제는 별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실제로 2024년 공청회에서는 동상 건립에 찬성하는 발표가 있었지만 반대 측의 공식 발표자는 없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2024년 당시 한인회 자체가 선거공탁금 관련 공금횡령과 기타 회계비리 문제로 당선무효 소송에 휘말려 있던 결격사유가 명백한 회장 체제에서 졸속적으로 가졌던 공청회로 그 공신력에 문제가 없다고 할수 없다.
반면 2026년 9월 현재 대내외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있는 박은석 회장이 이끄는 애틀랜타 한인회 이사회는 한인회관 내 동상 설치에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결의를 했으며, 한인원로회 역시 동포사회 전체의 동의가 없는 시설물을 한인회관에 설치하지 말 것을 촉구한 상태다.
그럼에도 동상 추진 측은 이미 절차를 거쳤으며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어느 한쪽의 주장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과거에 어떤 절차가 있었는지, 현재
한인회관의 관리운영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설치와 관리에 관한 법적•재정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그리고 동포사회의 실질적인 합의가
존재하는지를 투명하게 재 확인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동상이 아니라 대화다
애틀랜타 한인사회는 지금 이미 여러 갈등과 반목으로 분열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논쟁적인 영구 시설물을 서둘러 설치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화합의 상징이 아니라 현재의 갈등을 미래로 고정시키는 처치 곤란한 고약한 상징물이 될 수도 있다.
더욱이 현재 보도에 따르면 동상 제막식은 2026년 10월 1일로 추진되고 있으며, 한인회 측은 설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식화 했다.
동상 추진 측은 기존에 이사회 승인과 공청회 등의 절차를 거쳤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만큼, 지금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강행보다 사실관계와 절차를 공개하고 사회적 합의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나는 이승만을 역사에서 지우자는 것도 아니다.
맥아더를 평가절하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두 사람을 제대로 기억하자는 것이다.
공적만 기억하는 것은 역사교육이 아니다.
과오만 기억하는 것도 완전한 역사가 아니다.
공적과 과오를 함께 기록하고, 서로 다른 평가가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후세에 물려주는 것이 진정한 역사교육이다.
한인회관은 모두의 집이어야 한다
애틀랜타 한인회관은 특정 세력의 기념관이 아니다.
특정 정치인의 기념관도 아니며 특정 이념의 전시관도 아니다.
이민 1세대가 피땀으로 마련하고,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야 할 우리 모두의 공동자산 이다.
그곳에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도 들어올 수 있어야 하고, 그 역사에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민주사회다.
나는 오히려 한인회관에 다음과 같은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현대사와 미주 한인이민사를 함께 보여주는 역사공간.
그곳에서 이승만의 건국 과정과 한미동맹을 소개하고,
동시에 그의 장기집권과 3·15 부정선거, 4·19혁명도 소개할 수 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중국군 개입에 대한 그의 전략적 판단과 전쟁 확대 논쟁도 함께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이 훨씬 더 교육적이지 않은가.
그것이 훨씬 더 미국이라는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 한인들의 역사관에 맞지 않는가.
동상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역사에 대한 양심이다
동상은 돌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도, 무조건적인 부정도 아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기억할 수 있는 용기다.
이승만에게 공적이 있었다면 공적을 기록하자. ㅡ
그에게 과오가 있었다면 과오도 기록하자.
맥아더가 대한민국을 구하는 데 기여했다면 그것을 기억하자.
그러나 그의 전략적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면 그것 역시 숨기지 말자.
그리고 그 모든 판단을 우리 후손들이 스스로 하도록 하자.
그것이 민주주의다.
나는 그래서 묻고 싶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승만과 맥아더의 동상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역사관을 가진 동포들이 함께 앉아 대한민국의 역사와 미주 한인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한인회관인가.
한인회관은 어느 한 사람의 집도 아니고 어느 한 진영의 기념관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집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세워지는 영구적인 상징물 역시 어느 한쪽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에필로그
역사는 기억하되, 제발 공동체의 문은 닫지 말자.
지금 우리가 동상보다 먼저 세워야 할 것은 삼가, 무너진 동포사회 안팍의 ‘신뢰’라 쓰고 더불어 화합 이라 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