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보로, N.C,=김선엽 기자] 최근 미국 전역에서 취업사기와 임금착취, 이민신분을 악용한 강제노동 사례가 잇따라 적발되면서 노동 인신매매(Labor Trafficking)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인신매매를 성매매 범죄로만 인식하지만, 미국에서는 허위 취업 제안이나 임금 착취, 비자 취소 협박, 여권 압수 등도 상황에 따라 노동 인신매매라는 중범죄로 처벌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전국 인신매매 핫라인에는 2,220건의 노동 인신매매 사건이 보고됐으며, 전문가들은 실제 피해 규모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언어장벽과 신분 문제에 취약한 이민자 사회가 주요 표적이 되고 있어 한인사회 역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미 법무부(DOJ), 연방수사국(FBI), 노동부(DOL)는 인신매매를 단순히 사람을 이동시키거나 감금하는 범죄가 아니라 폭력(force), 사기(fraud), 강압(coercion)을 통해 노동이나 서비스를 강제로 제공하도록 만드는 범죄로 정의하고 있다. 즉, 반드시 납치나 감금이 있어야만 인신매매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고용주가 허위 취업광고로 근로자를 모집한 뒤 약속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여권과 신분증을 압수하고, 비자 취소나 추방을 협박하며 퇴사를 막는 경우 노동법 위반을 넘어 노동 인신매매로 수사될 수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DHS)는 특히 이민 신분을 이용한 협박과 통제를 노동 인신매매의 대표적인 수법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대표적인 노동 인신매매 유형으로는 ▲허위 취업광고 및 취업사기 ▲임금 미지급 및 임금 착취 ▲과도한 노동 강요 ▲여권·신분증 압수 ▲외출 및 이동 제한 ▲비자 취소 또는 추방 협박 ▲영주권 스폰서 철회 협박 ▲가족에 대한 위협 ▲빚을 이유로 한 강제노동 등이 있다.
반면 단순 임금체불이나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만으로는 일반적으로 노동법 위반에 해당한다. 그러나 여기에 협박이나 강압, 신분 악용 등이 결합되면 노동 인신매매 범죄로 인정될 수 있다.
실제 통계는 노동 인신매매가 결코 드문 범죄가 아님을 보여준다.
전국 인신매매 핫라인(National Human Trafficking Hotline)에 따르면 2024년 미국 전역에서 접수된 인신매매 관련 신고 및 제보는 총 3만2,309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잠재적 인신매매 사건은 1만1,999건, 잠재적 피해자는 2만1,865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노동 인신매매는 2,220건으로 전체 인신매매 사건의 약 20% 가까이를 차지했다.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 사건이 6,647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전문가들은 노동 인신매매가 실제 규모에 비해 현저히 과소 보고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 인신매매는 흔히 ‘숨은 범죄(Hidden Crime)’로 불린다. 피해자 상당수가 자신이 범죄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고용주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취업비자 소지자나 신분 문제가 있는 이민자들은 추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해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유로 실제 노동 인신매매 규모는 공식 통계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처벌 사례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국토안보부가 발표한 2024 회계연도 보고서에 따르면 연방 수사기관은 인신매매 관련 범죄로 2,500건 이상을 체포했으며, 914건을 기소하고 405건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다만 이 수치에는 노동 인신매매와 성매매 인신매매가 모두 포함돼 있다.
수사기관들은 노동 인신매매가 농업, 건설업, 식당, 호텔, 제조업, 세차장, 가사도우미, 간병인, 미용업계 등 다양한 업종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피해자 상당수는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신규 이민자나 외국인 근로자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인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영주권 스폰서나 취업비자를 이유로 근로자를 통제하거나, 신분 문제를 빌미로 협박하는 행위는 단순한 ‘갑질’이 아니라 연방법상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비자를 취소시키겠다”, “영주권 스폰서를 철회하겠다”, “신고하면 추방당할 수 있다”는 식의 협박은 노동 인신매매 수사에서 중요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연방정부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T 비자와 U 비자 등 특별 구제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노동 인신매매 피해가 의심될 경우 전국 인신매매 핫라인(1-888-373-7888) 또는 지역 수사기관에 신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취업을 조건으로 여권을 맡기라고 하거나, 신분 문제를 이용해 협박하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퇴사를 막는 경우는 단순 노동분쟁이 아니라 노동 인신매매일 수 있다”며 “특히 이민자들은 자신의 권리와 미국 법률을 정확히 알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