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김선엽 기자】 살아있는 동물의 살점을 파고들어 먹어 치우는 치명적인 해충, 일명 ‘살 파먹는 구더기’가 미국 본토에 상륙해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내에서 이 해충에 의한 감염 가축이 발견된 것은 지난 1966년 공식 박멸 선언 이후 60년 만의 일이다.
미 농무부(USDA) 동식물검역소(APHIS)는 텍사스주와 뉴멕시코주 일대에서 ‘살 파먹는 구더기’(공식 명칭 신세계살파리) 감염 사례 3건이 추가로 확진됐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첫 감염 보고 이후 일주일 만에 누적 확진 건수는 총 5건으로 늘어났다.
현재까지 확인된 감염 동물은 텍사스 남부 자발라 카운티와 라살 카운티의 송아지 3마리, 길레스피 카운티의 염소 1마리다. 당초 텍사스 발생 건으로 보고됐던 소형 반려견 감염 건은 역학조사 결과 인접한 뉴멕시코주 리 카운티 거주 반려견으로 확인되면서 뉴멕시코주의 첫 번째 감염 사례로 최종 재분류됐다. 뉴멕시코주 수의 당국은 해당 반려견이 외지 여행 이력이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 가택 주변에 이미 성체 파리가 퍼져 구더기를 옮겼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 해충은 일반 구더기와 달리 죽은 세포가 아닌 온혈동물의 살아있는 조직을 먹고 자라는 끔찍한 생태적 특성을 가졌다. 성체 파리가 가축이나 야생동물, 반려견 등의 미세한 상처나 배꼽 등 노출된 부위에 알을 낳으면, 부화한 구더기가 살 속을 나사(Screw)처럼 비틀며 안에서부터 생살을 파 먹는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극심한 고통과 함께 2차 세균 감염으로 인해 몇 주 안에 폐사에 이른다.
미국 축산업계는 이번 사태를 심각한 바이오 안보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 농무부는 이 구더기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지 못할 경우, 미국 최대 소고기 생산지인 텍사스주의 축산 경제에서만 최소 18억 달러(약 2조 4천억 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미 수년간 이어진 가뭄으로 미국의 소 사육 두수가 급감해 소고기 가격이 역대 최고치에 달한 상황에서, 살 파먹는 구더기의 창궐은 미국 축산업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적 파장도 시작됐다. 캐나다 식품검사청은 확진 발표 직후 텍사스산 가축의 수입을 전면 일시 중단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정부와 지자체는 초강수 대응에 나섰다. 그레그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는 주 전역에 ‘재난 사태’를 선포하고 방역을 방해하는 모든 행정 규제를 유예했다. 당국은 감염 가축이 발견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20킬로미터(12마일)의 격리 구역을 설정하고 이동 통제에 돌입했다.
브룩 롤린스 미 농무부 장관은 “미 국방부가 이번 사태를 최우선 안보 과제로 지정했다”라며 “연방 자원 조달과 현지 방제 공장 건설을 가속화하기 위해 군 사령관을 방제 자문역으로 전격 투입했다”라고 밝혔다. 당국은 현재 텍사스 남부에 매주 400만 마리의 불임 수컷 파리를 항공 살포하여 야생 암컷의 번식을 차단, 구더기 부화 자체를 막는 ‘불임 해충 방제 기술(SIT)’을 가동 중이며, 대규모 방제를 위해 텍사스 현지에 7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사육 공장을 건설 중이다.
다만 방제 방식을 두고 내부 잡음도 일어났다. 시드 밀러 텍사스 농무장관은 “연방 정부의 불임 파리 방식은 너무 느려 축산업이 먼저 망할 것”이라며 강력한 독극물 미끼를 즉각 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 농무부와 곤충학 전문가들은 검증되지 않은 독극물 처방이 생태계를 교란하고 인간과 다른 동물까지 중독시킬 수 있다며 밀러 장관의 주장을 일축했다.
농무부는 이 구더기가 도축된 고기나 과일 등 가공 식료품은 감염시키지 않으므로 시중의 소고기 공급망과 식품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당국은 축산 농가와 반려인들에게 동물의 작은 상처도 즉시 소독하고, 상처 부위에 구더기가 관찰될 경우 즉시 24시간 정부 핫라인으로 신고해 줄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사진 출처: Joel Angel Juarez / Getty Imag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