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보로=김선엽 기자] 중동발 전쟁의 여파가 에너지와 식량을 넘어 일상의 필수 소비재인 피임 용품 시장까지 덮쳤다. 세계 최대 콘돔 제조업체가 원자재 공급난을 이유로 두 자릿수 가격 인상을 예고하면서 공중보건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말레이시아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콘돔 제조사 카렉스(Karex)의 고미아키아트 CEO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공급망 혼란이 지속될 경우 제품 가격을 20%에서 30%가량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말 이란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콘돔 제조의 핵심인 실리콘 오일과 암모니아, 포장재 원료인 나프타 등의 수급이 한계치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현재 아시아 나프타 물량의 41%가 중동에서 공급된다. 카렉스 측은 원자재 가격 상승뿐만 아니라 선박들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해상에 묶여 있는 물류 정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설상가상으로 제조 공장이 밀집한 동남아시아 현지의 에너지 위기도 생산을 압박하고 있다. 미얀마와 캄보디아 등 일부 국가는 이미 연료 배급제에 돌입했으며, 베트남 등지에서는 유가 급등으로 통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일터를 떠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공장 가동률 저하로 이어져 전 세계적인 공급 부족 사태를 심화시킬 전망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가격 인상이 단순한 소비자 지출 위축을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콘돔 보급률이 떨어질 경우, 성병 확산과 계획되지 않은 임신 등 심각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카렉스 측은 현재 몇 달치 비축 물량은 확보된 상태라고 밝혔으나, 중동 사태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실제 소매 가격 인상은 이르면 올해 상반기 내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에 신음하는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성생활’마저 사치로 다가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