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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미비자 은행문 걸어잠그는 트럼프 행정부

자진 출국 압박 위해 금융 전방위 조여

K Voice Today by K Voice Today
2026년 08월 09일
in Atlanta, 로컬뉴스
0
서류미비자 은행문 걸어잠그는 트럼프 행정부

[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서류미비 이민자들의 은행 계좌·신용카드·대출 등 금융시스템 접근을 전방위로 제한하는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국경 단속과 대규모 추방작전에 이어 ‘금융 차단’을 자진 출국(Self-Deportation) 유도의 새로운 지렛대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미국 금융시스템의 신뢰성 회복(Restoring Integrity to America’s Financial System)’이라는 제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명령은 은행 등 금융기관이 고객의 이민 신분을 금융 리스크 평가 요소로 반영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재무장관과 연방 금융감독기관들은 1970년 제정된 은행비밀법(BSA)에 근거해, 자금세탁·테러자금조달·인신매매 등의 위험이 있는 고객을 식별할 수 있도록 은행권에 새 지침을 마련하게 된다.

백악관은 고객이 추방될 경우 은행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신용위험이 발생한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다만 은행업계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모든 신규·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시민권 확인을 의무화하는 조항은 최종안에서 빠졌다. 사전에 이 같은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매우 우려스럽다”며 은행이 이민 단속의 도구로 동원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2일 재무부가 불법이민을 지원하는 데 쓰인 은행 계좌를 폐쇄하도록 하는 내용의 후속 지시에 서명했다. 트루스소셜을 통해 “서류미비자와 외국인 사기범들이 매년 미국 납세자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훔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인신매매·마약밀매·불법이민·카르텔 자금 이동에 이용되는 금융기관을 겨냥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불법이민을 지원하거나 미등록 이민자에게 지급된 정부 급여를 보유한 계좌는 폐쇄·압류·몰수될 수 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7월 중순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책의 목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서류미비자들은 더 이상 사회의 그림자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신용카드와 은행 계좌를 이용하고 급여도 계좌이체로 받는다”며 “미국의 금융시스템에 완전히 편입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금융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 대규모 추방을 촉진하는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라며 “자본에 대한 접근이 끊기면 자진 출국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밀러는 행정부가 금융기관들과 개별 협의를 시작해 서류미비 이민자의 계좌 관리와 서비스 제공 여부를 직접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재 행정명령이 모든 은행에 고객의 체류 신분 확인을 의무화한 것은 아니며, 재무부와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위험 기반 심사에 따른 추가 정보 요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규제 개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기관도 실행 착수…소비자금융보호국 지침 발표

행정명령에 발맞춰 연방기관들의 실행도 시작됐다.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대출기관들이 상환능력을 평가할 때 신청자의 이민 신분과 취업허가 여부를 고려해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지침을 발표했다. 이는 대출·신용 심사 과정에서 불법체류자를 사실상 고위험군으로 분류하도록 유도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가장 최근인 8월 4일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은행과 신용조합 등 금융기관에 불법체류자에 대한 대출 심사를 강화하도록 재차 권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초기에는 신규·기존 고객 전체를 대상으로 이민 신분 확인을 의무화하는 방안까지 거론됐으나, 은행권의 강한 반발과 업무 부담 우려로 현재는 “불법 금융거래로 의심되는 사례”를 중심으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디뱅킹 대상, 이미 대출 접근성 낮았다”

이번 조치의 실효성과 파급력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어반연구소(Urban Institute) 조사에 따르면, 사회보장번호 대신 사용되는 개인납세자번호(ITIN) 보유자에게 발급된 모기지는 이미 연간 5,000~6,000건 안팎에 불과할 만큼 은행권은 ITIN 보유자 대출에 소극적이었다. 패니메이·프레디맥 등 정부보증기관도 ITIN 대출 보증을 꺼려온 것으로 알려져, 이번 조치가 실제로 얼마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반면 이민자·소비자 권익 단체들은 정책의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한다. 전미소비자법센터(NCLC)의 다이앤 톰슨 부국장은 “이 행정명령이 규제당국에 의해 이행된다면 미국 금융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고 전례 없는 규모의 디뱅킹을 강제할 것”이라며 “이 행정부는 그동안 보수 진영이 ‘디뱅킹’당하는 문제에 몰두해 왔지만, 정작 이번 행정명령은 의혹과 편견에 근거해 수백만 명을 조직적으로 디뱅킹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권 등 시민권 증명서류를 즉시 제시하기 어려운 고령층·저소득층 주민들까지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되는 ‘디뱅킹’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제도권 은행을 떠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아직 남은 변수들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연방정부가 금융기관에 서류미비자의 기존 계좌를 일괄 폐쇄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발표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인 시행 방식과 법적 근거는 향후 재무부·연방준비제도·CFPB 등 감독당국의 세부 지침과 은행권의 대응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국경 단속을 넘어 금융·고용·행정서비스 등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는 이번 정책 기조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내 서류미비 이민자 사회는 물론, 이들과 거래하는 금융기관들도 향후 세부 규정의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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