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워싱턴DC 연방법원에서 8일, 22세 싱가포르 국적 남성 말론 램(Malone Lam)이 2억 4500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훔치고 세탁한 혐의로 유죄를 인정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개인을 상대로 한 암호화폐 절도 사건 중 최대 규모로 꼽힌다.
사건 개요
램은 ‘조직범죄단속법(RICO)’ 공모 혐의 1건에 대해 콜린 콜라코텔리(Colleen Kollar-Kotelly) 연방판사 앞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최대 형량은 징역 20년이며, 재판부는 이날 선고 기일은 정하지 않고 오는 12월 8일 상황보고 기일만 지정했다.
검찰에 따르면 램은 이번 사건에 연루된 18명의 피고인 중 11번째로 유죄를 인정한 인물이지만, 조직의 ‘주모자’가 유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법무부 수사의 중대한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램은 마이애미와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활동해왔고, 최근까지 마이애미에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온라인 게임 플랫폼에서 만난 또래 젊은 남성들과 함께 조직을 꾸려 ‘소셜 엔지니어링(사회공학적 기법)’ 사기 범죄를 저질러온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수법: 구글·제미니 직원 사칭한 ‘사회공학적 해킹’
이 사건은 2024년 8월 18일, 워싱턴DC에 거주하는 한 암호화폐 장기 투자자를 겨냥한 공격에서 시작됐다. 공범들은 구글과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Gemini)의 직원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계정이 해킹 위협에 처해 있다고 속였다. 이들은 피해자를 속여 구글 드라이브 접근 권한과 2단계 인증 보안코드를 넘겨받았고, 화면공유 프로그램을 이용해 개인키(private key) 정보까지 빼냈다.
이렇게 확보한 정보로 램은 4100비트코인 이상을 빼돌렸다. 훔친 자금은 신원 확인이 필요 없는 거래소를 통해 모네로(Monero) 등으로 전환된 뒤, ‘필체인(peel chain)’ 기법과 다수의 경유 지갑, 가상사설망(VPN)을 거치며 세탁됐다. 현금은 일부 인형 속에 넣어 미국 전역으로 배송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공개한 녹취에 따르면, 거액을 확보한 순간 공범들은 환호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달간의 탕진 파티”…나이트클럽서 하루 저녁 56만 9000달러 지출
범행 이후 램과 조직원들은 훔친 자금을 한 달여간 초호화 소비에 쏟아부었다. 마이애미와 로스앤젤레스에 고급 대저택을 임차했고, 개인 전용기와 경호원까지 고용했다.
특히 자동차 구매에 막대한 자금을 썼다. 램은 커스텀 포르쉐·람보르기니·페라리 등 총 30대가 넘는 슈퍼카를 사들였으며, 그중에는 380만 달러짜리 파가니 우아이라(Pagani Huayra)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차량은 ‘크립토 어드미니스트레이션(Crypto Administration LLC)’이라는 유령회사 명의로 등록됐다. 이 밖에도 200만 달러 상당의 명품 시계, 보석, 명품 핸드백 등을 구입했고, 모델과 인플루언서들에게 에르메스 가방을 선물처럼 나눠준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트클럽 유흥비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클럽에서는 하루 저녁에만 56만 9000달러를 썼고, 검찰은 한 달여간 클럽에서만 400만 달러 이상을 탕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당시 마이애미 법정에 출석한 앨리샤 발레(Alicia Valle) 연방치안판사는 검찰의 소비 내역 브리핑을 듣고 “영화 ‘페리스의 해방(Ferris Bueller’s Day Off)’의 악당 버전 같다”며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검거 순간: 비번 경찰관의 밀고에도 결국 체포
이 같은 ‘탕진 파티’는 한 달가량 이어지다 2024년 9월 18일 연방수사국(FBI)이 마이애미의 한 대저택을 급습하며 막을 내렸다. 흥미로운 점은 비번 상태였던 한 법 집행기관 소속 경찰관이 사전에 체포 작전을 램에게 귀띔해줬다는 사실이 공소장에 적시돼 있다는 점이다.
같은 날, 공범으로 지목된 지안디엘 세라노(Jeandiel Serrano·21)도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약 50만 달러 상당의 시계를 찬 채 체포됐다. 검찰에 따르면 세라노는 훔친 자금 중 약 3000만 달러를 보관한 암호화폐 거래소 계정을 개설하면서 IP 주소를 제대로 숨기지 않아 캘리포니아주 엔시노의 임대 자택(월 임대료 4만 7500달러)이 추적됐다.
체포 이후 램이 교도소에서 지인들과 나눈 통화 녹취록도 공개됐다. 그는 “우리가 잡히면 어떻게 될지 늘 얘기했었는데, 이 정도로 심각해질 줄은 몰랐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정에서 판사가 구매한 차량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는지 묻자, 램은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답했다.
조직 실체: 게임 친구들이 만든 ‘소셜 엔지니어링 기업’
검찰 수사 결과 이 범죄 조직은 2023년 10월부터 수사를 거쳐 추가 기소가 이뤄진 2025년 5월까지 광범위하게 활동을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램은 텍사스에서 두 명의 공범과 함께 자취를 시작하며 사이버 범죄로 번 돈으로 월세를 충당했고, 이후 캘리포니아·코네티컷·뉴욕·플로리다 등 각지, 나아가 해외 거주자까지 온라인 게임 인맥을 통해 조직에 합류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를 확대해온 검찰은 2025년 5월 15일 12명을 추가 기소하면서, 사건 규모가 2억 6300만 달러 상당의 RICO 공모 사건으로 확대됐다. 여기에는 2024년 7월 별도로 발생한 1400만 달러 규모 절도 사건과 하드웨어 지갑을 노린 가택 침입 사건도 포함됐다. 검찰은 램이 구속 상태에서도 조직원들을 통해 범행을 계속 지시했으며, 여자친구에게 사치품을 보내도록 지시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일부 조직원은 2025년 초까지 두바이에서 추가 사회공학적 공격을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공범 중 한 명인 에반 탱지먼(Evan Tangeman)은 지난 4월 자금세탁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70개월을 선고받은 바 있다. 현재까지 18명의 피고인 중 11명이 유죄를 인정한 상태다.
검찰 발언 및 향후 절차
지닌 페리스 피로(Jeanine Ferris Pirro) 워싱턴DC 연방검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램이 이끈 국제 조직이 기만적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노리고 사생활을 침해했으며, 수억 달러에 이르는 암호화폐를 훔쳤다고 밝혔다.
램의 선고 기일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오는 12월 8일 상황보고 기일에서 추가 절차가 논의될 예정이다. 앞서 램의 초기 출석 당시 검찰은 연방양형기준상 최소 14년의 징역형이 구형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 Broward County Mugshots Zone / Wikiped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