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니, Ga=김선엽 기자】 미국에서 수십 년간 치열하게 자산을 일구고 은퇴 후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이른바 ‘U턴 역이민’ 한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 법무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감소했던 귀화 및 국적 회복자가 최근 5년 사이 다시 늘어나 2025년 기준 연간 국적 취득자가 1만 5,381명을 기록했으며, 과거 국적을 상실했다가 다시 회복한 한인도 연간 4,000명 선을 다시 넘어섰다. 특히 65세 이상 복수국적 허용 제도를 활용해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려는 미주 한인 은퇴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추세다.
그러나 꿈에 부푼 고국 귀환 길에 가장 무서운 지뢰밭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미 국세청(IRS)이 부과하는 ‘국적포기세(Expatriation Tax, 일명 Exit Tax)’다. 많은 한인이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포기하면 세무 의무도 끝난다고 오해하지만, 아무 준비 없이 국적을 반납했다가는 앉은자리에서 전 세계 자산에 대한 세금 폭탄을 맞고 은퇴 자금을 대거 날릴 수 있다.
국적포기세의 본질은 ‘가상 양도(Deemed Sale)’ 제도다.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포기하는 날의 바로 전날을 기준으로, 그 사람이 전 세계에 보유한 부동산, 주식, 은퇴 계좌 등 모든 자산을 시장 가격으로 ‘통째로 매각했다’고 가정해 미실현 이익(Capital Gain) 전체에 세금을 계산해 버린다. 미국에 있는 집을 팔지 않고 보유 중이거나, 한국에 있는 상속 부동산을 그대로 두었어도 세금이 청구된다.
IRS가 규정하는 국적포기세 과세 대상자(Covered Expatriate) 기준은 세 가지로, 이 중 하나라도 걸리면 ‘세금 타깃’이 된다.
자산 기준: 포기 시점 기준 전 세계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이 200만 달러 이상인 경우. 이 기준은 수년째 인플레이션 연동이 되지 않아, 자산 가치가 상승한 한인 자산가들이 대거 사정권에 들어왔다.
소득세 기준: 직전 5년간 연평균 미국 연방 소득세 납부액이 211,000달러(2026년 기준, 매년 인플레이션 반영)를 초과하는 경우.
세무 준수 기준: 직전 5년간 미국의 모든 연방 세무 의무를 성실하게 준수했음을 증명(Form 8854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 순자산이 200만 달러 미만이어도 해외 금융계좌(FBAR/FATCA) 신고나 세금 보고 누락이 있었다면 자동으로 과세 대상이 된다.
시민권자뿐만 아니라 영주권자 역시 철저한 추적 대상이다. 미 세법상 지난 15년 중 8년 이상 영주권을 유지한 ‘장기 영주권자(Long-Term Resident)’가 영주권을 반납하거나 세법상 비거주자로 신분을 바꿀 때도 시민권자와 100% 동일한 국적포기세 기준이 적용된다.
회계 전문가들은 “많은 영주권 한인이 영주권 카드가 만료되거나 이민국에 반납 서류(Form I-407)만 내면 끝나는 줄 안다”며 “국세청에 정식으로 세무 보고(Form 8854)를 마치고 국적포기세 정산을 끝내기 전까지 미국의 과세 레이다는 멈추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한인 자산가들에게 진짜 지뢰밭은 ‘해외 자산 가치 평가’다. 미국 내 자산은 시가가 명확하지만, 한국에 두고 온 아파트나 토지, 가족 법인의 비상장 주식 등은 공정시장가치(FMV)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세금 규모가 수억 원씩 차이 나기 때문이다. 최근 국적포기세를 마주한 한인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사례 1] 한국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덫에 걸린 A씨: 미국 시민권자인 A씨는 은퇴 후 한국 귀환을 결심했다. 미국 내 예금과 주택을 합쳐 130만 달러 수준이라 ‘200만 달러 기준’에 안 걸릴 줄 알았다. 하지만 수십 년 전 부모님께 상속받아 서울에 남겨둔 아파트 한 채가 화근이었다. 최근 시세를 조회해 보니 아파트 가치가 150만 달러로 치솟아 있었던 것. 전 세계 총자산이 280만 달러로 집계되면서 A씨는 자동으로 과세 대상자가 됐다. 결국 A씨는 아파트를 팔지도 않았는데 수억 원에 달하는 미실현 이익에 대한 국적포기세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사례 2] 한국 지사 발령으로 영주권 포기했다 은퇴 계좌 날린 B씨: 11년째 영주권을 유지하던 직장인 B씨는 대기업 한국 지사 발령으로 영주권 포기를 결정했다. 주택과 은퇴 계좌(401k)를 합산하니 순자산이 240만 달러였다. 국적포기세 계산 시 일반 주식이나 부동산은 2026년 기준 910,000달러의 양도차익 공제(Exclusion Amount) 혜택을 받아 세금을 피할 수 있었으나, 401k 은퇴 계좌가 발목을 잡았다. 미 세법상 국적포기 대상자의 은퇴 계좌는 공제 혜택 없이 ‘포기 전날 전액 현금 인출된 것’으로 간주해 최고 37%의 일반 소득세율로 통과세가 부과된다. B씨는 평생 모은 은퇴 자금의 상당액을 세금으로 날렸다.
최근 업계 소식에 따르면, 연방 국세청(IRS)은 인공지능(AI)과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국적포기세 전담 감사 유닛(Expatriation Tax Practice Unit)’의 단속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특히 해외 금융계좌 신고법(FATCA)을 통해 한국 내 금융 자산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국적상실증명서 발행 시 사회보장번호(SSN) 매칭을 의무화해 탈세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올해 미 국무부가 시민권 포기 행정 수수료를 기존 2,350달러에서 450달러로 인하하면서 포기 절차 자체는 문턱이 낮아졌으나, 세법상의 문턱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셈이다.
애틀랜타 지역의 한 세무 전문가는 “미국에서 자산을 모으는 사람이 매년 내는 income tax보다 무서워해야 할 것이 바로 이 국적포기세”라며 “시민권·영주권 포기는 단순한 신분 정리가 아니라 인생 최대의 자산 방어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합법적으로 자산을 배우자에게 분산 증여해 200만 달러 미만으로 기준을 낮추거나, 손실 자산을 매각해 이익을 상쇄하는 등 최소 2년 전부터 CPA와 국제 세법 변호사를 대동해 정밀한 ‘탈출 전략’을 짜야 세금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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