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미국 전역 수천 개 지방정부와 경찰이 사용하는 자동 번호판 인식(ALPR) 카메라 업체 ‘플록 세이프티(Flock Safety)’의 장비 한 대가 해커들의 손에 넘어가면서,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감시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숫자와 함께 드러났다.
‘stegan0gram’이라는 이름의 해커 집단은 도로 위에 설치돼 있던 플록 카메라 한 대를 물리적으로 떼어내 저장 장치의 데이터를 대부분 복사한 뒤, 이를 탐사보도 매체 404미디어(404 Media)와 와이어드(Wired)에 넘겼다. 플록은 2025년 보안 경고에서 누군가 카메라에 물리적으로 접근하더라도 영상 데이터에는 접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해커들은 카메라 저장 장치의 암호화되지 않은 영역에서 암호화 키를 발견해 이를 무력화했다.
해커 중 한 명은 매체를 통해 “그냥 부숴버릴 이유가 있나, 역설계해서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의 비밀을 밝혀내면 되는데”라는 취지로 밝혔다.
3주 만에 차량 5만 대, 사진 160만 장
404미디어와 와이어드의 공동 분석 결과, 카메라 로그에는 여러 기간에 걸쳐 총 21일간의 활동 기록이 담겨 있었고, 이 기간 동안 카메라는 약 5만 200대의 차량을 촬영하며 약 160만 장의 이미지를 생성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약 3,300대의 차량이 기록됐고, 가장 많은 날은 4,454대에 달했다.
차량 한 대당 촬영되는 사진 수도 상당했다. 일반적인 차량 한 대가 지나갈 때 평균 28장의 사진이 생성됐으며, 일부는 100장을 넘기기도 했다. 카메라는 서로 다른 노출값으로 여러 장을 촬영해 번호판과 주변 장면을 모두 선명하게 포착한 뒤, 이미지를 스캔해 쓸 만한 프레임을 골라 자르고, 이를 다른 데이터와 함께 셀룰러 네트워크를 통해 플록 서버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흥미로운 점은, 번호판을 읽고 차량의 제조사·모델·색상을 식별하는 작업이 카메라 자체가 아니라 플록의 서버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카메라는 촬영과 1차 선별만 담당하고, 실제 ‘해독’은 클라우드 단에서 이뤄지는 구조인 셈이다.
또한 분석 과정에서 카메라에 탑재된 소프트웨어가 차량과 번호판, 자전거뿐 아니라 ‘사람’까지 명시적으로 감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다만 404미디어와 와이어드는 플록 카메라가 얼굴 인식 기능을 사용한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다만 사람을 탐지하고 분류하는 소프트웨어가 코드 안에 존재한다는 점은 확인했다. 코드 분석 결과 카메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온 사람의 위치를 기록하고, 각 탐지 결과에 신뢰도 점수를 매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지아주 알파레타 사례: 2천 개 넘는 기관이 조회 가능
이번 유출로 드러난 가장 충격적인 대목 중 하나는 데이터 접근 범위였다. 분석가들은 조지아주 알파레타의 플록 카메라 기록에 경찰서, 대학, 공항은 물론 연방 총무청(GSA) 감사관실(Office of Inspector General)까지 포함해 2천 개가 넘는 기관이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단순한 지역 경찰의 도구를 넘어, 플록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데이터를 공유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실제로 이전 보도들은 지역 경찰이 이른바 ‘피난처 관할구역(sanctuary jurisdictions)’에서도 연방 이민 당국의 수사를 위해 플록 네트워크를 활용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플록 측 반응: “불법 행위”라며 취약점 주장은 부인
이번 사태에 대해 플록 측은 카메라를 훔쳐간 행위 자체를 문제 삼았다. 플록 대변인은 “플록 카메라를 무단으로 제거하고 조작하는 행위는 불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플록은 보안을 중요하게 여기며 보안 연구자들이 잠재적 취약점을 직접 신고할 수 있도록 공개된 취약점 공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며 “해당 절차를 통한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고, 제공된 제한적인 정보만으로는 제기된 주장을 평가할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처음 있는 보안 문제 제기는 아니다. 보안 연구자 존 게인스(Jon Gaines)는 앞서 인증 절차 없이 관리자 기능에 접근할 수 있는 플록 하드웨어의 취약점을 발견했고, 이는 이후 미 사이버보안청(CISA)으로부터 10점 만점에 9.8점이라는 매우 높은 위험도로 평가됐다.
오남용 사례도 잇따라
플록 시스템을 둘러싼 논란은 기술적 취약점에 그치지 않는다. 한 보안관보는 개인적인 이유로 동료를 추적하기 위해 플록 감시 도구를 오용한 사실이 드러났고, 회사는 캘리포니아주 일부 카메라 네트워크에 대해 주(州) 밖의 기관들이 접근 경위에 대한 명확한 기록 없이 접속한 적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투명성 단체 ‘디스트리뷰티드 디나이얼 오브 시크릿(DDoSecrets)’의 공동 창립자 엠마 베스트는 “플록 세이프티의 ALPR 기기 한 대가 해킹·유출된 이번 사건은 대량 감시 기술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준다”며 “이런 기술은 악용하려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표적이 되는 동시에 개인의 프라이버시와는 양립할 수 없고, 물리적·전자적 침입에도 근본적으로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확산되는 ‘플록 반대’ 운동
이번 해킹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이미 거세지고 있던 플록 반대 여론에 기름을 부은 모양새다. 오클랜드 소재 반(反)감시 단체 ‘시큐어 저스티스(Secure Justice)’에 따르면 2021년 이후 214개 도시·카운티가 플록과의 계약을 해지했으며, 8월 한 달에만 90개 지자체가 계약을 종료해 7월 대비 4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8월 한 달간 하루 평균 3.3건의 계약 해지가 이뤄진 셈이다.
계약 해지 사유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경찰의 오남용 의혹, 외부 기관의 데이터 조회 문제, 이민 단속과의 연관성, 수정헌법 4조(부당한 압수수색 금지) 위반 우려, 공적 감독 부재, 계약·조달 절차 문제, 단순한 주민 반대 등이 공통적으로 거론된다. Newsweek
특히 이민 단속과의 연관성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404미디어가 공공기록을 토대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플록 네트워크 내 이민세관단속국(ICE) 관련 조회 건수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실제로 워싱턴주 린우드시에서는 2026년 2월 시의회가 7대 0으로 플록과의 계약 해지를 의결했는데, 이는 워싱턴대의 한 보고서가 주 밖의 기관들이 이민 단속 목적으로 보이는 방식으로 린우드의 네트워크에 접근한 사실을 확인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인근 에드먼즈시 역시 2026년 5월 플록 계약을 해지하며 스노호미시 카운티 내 세 번째 해지 도시가 됐는데, 이곳에서는 연방 관세국경보호청(CBP)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 연방 기관이 주 내 여러 플록 네트워크에 접근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플록 개리트 랭글리 최고경영자(CEO)는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세마포 세계경제 콘퍼런스에서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화가 나 있고 그 화를 쏟아낼 대상이 필요한 것”이라며 “현재 연방 행정부에 화가 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년 전, 1년 전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일 뿐이고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 매체 IPVM은 2021년부터 2026년 5월까지 28개 주에서 82건의 계약 해지가 있었으며, 해지 가속화 시점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몇 달 사이에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커지는 네트워크, 커지는 우려
논란 속에서도 플록의 사업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플록은 미국에서 가장 큰 감시 카메라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5,000곳이 넘는 경찰서와 1,000곳의 기업, 다수의 주택소유자협회와 49개 주에서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이 플록 카메라를 지나갈 때마다 번호판 정보와 차량 특징, 촬영 시간·장소가 기록되며, 매달 수십억 건의 차량 스캔 데이터가 생성·저장된다. 법 집행기관은 번호판 번호뿐 아니라 차량의 제조사, 모델, 심지어 범퍼 스티커로도 데이터를 검색할 수 있으며, 자신의 기관이 비용을 지불한 카메라의 데이터뿐 아니라 다른 플록 고객사들이 수집한 데이터도 조회할 수 있다. 일부 기관은 ‘전국 조회 도구(National Lookup Tool)’에 등록해 이런 교차 조회를 확대하기도 한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이미 연방 차원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론 와이든 상원의원은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서한을 보내 플록의 데이터 관행에 대한 조사를 촉구한 바 있다.
한편 계약을 해지한 도시들이 반드시 감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디언은 일부 도시가 플록 대신 액손(Axon) 등 경쟁 업체로 갈아탔다며, 주민들이 ‘플록 카메라’는 잃어도 자동 차량 감시 자체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보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