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보로, N.C.=김선엽 기자] 만성 B형 간염 환자가 평생 약을 복용하지 않고도 면역체계를 통해 바이러스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기능적 완치(functional cure)’의 길이 열렸다.
다국적 제약사 GSK와 아이오니스 파마슈티컬스가 공동 개발한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 계열의 신약 ‘베피로비르센(제품명 베피)’이 대규모 임상 3상 시험에서 의미 있는 바이러스 억제 효과를 입증했다. 세계적인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총 1,838명의 만성 B형 간염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B-Well 1’ 및 ‘B-Well 2’ 임상 3상 시험에서 베피로비르센을 투여받은 환자의 약 20%가 기능적 완치 단계에 도달했다. 반면 기존 표준 치료제와 가짜 약(플라시보)을 함께 투여받은 대조군에서는 완치 사례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전 세계 만성 B형 간염 환자는 2억 5,000만 명을 웃돌며, 매년 약 110만 명이 간암이나 간부전 등의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기존의 표준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의 복제를 억제하여 간 손상을 막는 데 그쳤고, 투약을 중단하면 바이러스가 다시 증식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평생 약을 복용해야 했다. 기존 경구용 항바이러스제로 기능적 완치에 도달하는 비율은 1% 미만에 불과했다.
베피로비르센은 바이러스의 유전적 구성 성분(mRNA 및 pregenomic RNA)에 직접 결합해 파괴함으로써 바이러스 복제를 차단하는 삼중 작용 메커니즘을 가졌다. 특히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B형 간염 표면 항원(HBsAg)의 수치를 급격히 떨어뜨려 환자의 자체 면역체계가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도록 능력을 회복시켰다.
이번 임상시험에서 환자들은 6개월 동안 주 1회 베피로비르센 주사제를 투여받았다. 주사 치료 종료 후 6개월 동안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은 환자들은 기존에 복용하던 알약 치료까지 전면 중단했다. 최종적으로 모든 치료를 중단한 지 6개월(첫 투여 시작 후 총 72주)이 지난 시점까지 바이러스가 미검출 상태를 유지한 환자의 비율은 치료 전 바이러스 수치가 낮았던 환자군에서 최대 28%까지 높게 나타났다. 일부 환자에게서 간 효소 수치 상승 등의 부작용이 관찰됐으나, 이는 바이러스 제거 과정에서 나타나는 면역 반응의 일종으로 해석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4월 베피로비르센의 신약 승인 신청(NDA)을 접수하고 이를 우선심사(Priority Review) 및 획기적 치료제(Breakthrough Therapy)로 지정했다. 최종 승인 여부는 오는 10월 26일 이전에 결정될 예정이다. 유럽의약품청(EMA) 역시 이 약물에 대한 심사에 착수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연구 결과가 평생 지속되던 B형 간염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보로의 보건 관계자는 이번 신약이 승인될 경우 만성 질환으로 고통받던 환자들의 경제적·신체적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계는 베피로비르센을 중심 축으로 삼아 향후 다른 치료제와의 병용 요법을 개발하면 완치율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