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국제질서는 미·중 양극 체제라는 뚜렷한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군사·경제·안보 모든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격화되고 있으며, 그 사이에 위치한 한국과 일본은 중대한 전략적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세계 10위와 3위의 경제력을 갖추고 있지만, 단독으로는 두 초강대국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이다. 경제 규모와 군사력, 그리고 외교적 영향력에서 미·중 사이에 끼어 있는 두 나라는, 독자적으로는 늘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은 마치 겨울에 얇은 옷 하나로 버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약소국들이 강대국의 압박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길은 연합이었다. 중국 전국시대에 합종(合從) 전략이 그랬고, 삼국지에서 위·촉·오 삼국이 균형을 이루며 서로를 견제했던 구조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동북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나아가야 할 길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주목할 것은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다. 두 나라는 수 세기에 걸친 전쟁과 갈등을 뒤로하고, 석탄철강공동체에서 출발해 유럽연합(EU)이라는 거대한 통합체로 발전시켰다. 과거사를 직시하되 미래를 향한 공동체 비전을 더 크게 세운 것이다. 오늘날 유럽의 번영과 안정은 바로 이 결단에서 시작되었다.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상처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에 매여 현재와 미래를 놓치는 것은 더 큰 손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공방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제도적 통합이다.
경제적으로 한국은 반도체·디지털·조선·콘텐츠 산업에서, 일본은 첨단 제조·소재·부품·장비에서 강점을 가진다. 서로의 강점은 보완적이며, 공동으로 공급망을 구축한다면 미·중 사이에서 협상력은 배가될 것이다. 안보적으로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독이 아닌 공동 대응 체제가 필요하다.
EU식 통합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자유무역협정에서 시작해 관세동맹, 단일시장, 그리고 더 나아가 정치·경제 공동체로 발전하는 단계적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한일 양국은 더 이상 고립된 약자가 아니라, 세계 경제 4위권의 강력한 경제블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지금 한국과 일본에 주어진 국제적 환경은 과거 독일과 프랑스가 맞닥뜨렸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결국 선택은 명확하다. 과거의 그림자에 갇혀 각자 생존을 고민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향한 공동체를 세워 함께 번영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