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출산관광은 이 순간부로 전면 금지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출생시민권 관련 행정명령 2건에 서명했다. 외교공관 직원, 테러조직 구성원, ‘적성국’ 소속으로 분류된 인물의 자녀는 미국에서 태어나도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원정 출산을 목적으로 입국 사유를 속인 산모의 자녀에게도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번 조치는 연방대법원이 지난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2025년 1월 취임 첫날 서명)을 6대3으로 위헌 판단한 지 불과 5주 만에 나왔다. 대법원은 당시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사람은 부모의 체류 신분과 무관하게 시민권을 갖는다는 기존 해석을 재확인하면서도, 외교관 자녀 등 ‘역사적으로 인정돼 온 예외’는 유효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로 이 예외 조항을 발판 삼아 재도전에 나섰다.
새 행정명령 2건, 무엇이 담겼나
① “Continuing to Protect the Meaning and Value of American Citizenship” 외국 정부를 위해 로비하거나 활동하는 외국인, 적성국 국민, 테러조직 구성원 등 특정 범주에 속한 부모의 자녀는 출생시민권 대상에서 제외된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서명식에서 이 범주에 미국의 적대국 국민, 외국 테러조직 구성원, 외국 정부를 대리하는 로비스트가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외교공관 직원이 미국에서 낳은 아이나, 테러단체·적성국 소속 인물이 미국 또는 미국령에서 낳은 아이도 대상이다.
② Ending Birth Tourism 국무장관과 국토안보장관에게 권한을 위임해 원정 출산 자체를 차단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이다. 밀러 부비서실장은 이 시점부터 출산 목적을 숨기고 입국하려는 시도가 전면 금지되며, 그 누구도 이런 목적으로는 비자를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미 미국 내에 있는 불법체류자·일시체류자의 자녀에게는 영향이 없다는 점이 지난해의 훨씬 광범위했던 시도와 다른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6월 대법원 판결을 “매우 유감스러운 판결”이라고 표현하며 “표결이 아슬아슬했지만, 정말 유감스러운 결과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이걸 이용해 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상업화된 원정출산 산업을 문제 삼았다. CNN은 이번 조치를 두고 기존 법을 강화하고 대법원이 인정한 예외의 범위를 넓히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분석했다. 이민연구센터(CIS) 추산에 따르면 2016~2017년 한 해 동안 약 2만~2만5000명의 산모가 원정출산 목적으로 미국을 찾았다.
언제부터, 어떻게 적용되나
백악관이 공개한 행정명령 원문을 보면, 이번 두 건은 지난해 EO 14160처럼 “서명 후 30일 뒤부터 시행” 같은 유예 조항 없이 서명 즉시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다만 실제 현장 적용까지는 몇 단계가 더 남아 있다.
- “Ending Birth Tourism”은 대통령이 갖는 비자 관련 권한(이민국적법 215조)을 국무장관과 국토안보장관에게 위임하는 구조다. 두 장관은 이 권한에 따라 ▲원정출산 목적 입국 시도자의 비자 발급 거부 ▲기존 비자·여행허가 취소 및 영구 입국 금지 ▲이미 원정출산에 가담한 외국인의 입국 거부·추방 ▲알선 조직·개인에 대한 제재 등을 “재량에 따라” 시행할 수 있다. 즉 명령 자체는 발효됐지만, 영사관 창구나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실제로 적용되려면 두 부처가 세부 지침(rules, operational guidance)을 마련해 하달해야 한다. 인도적 사유나 국익 판단에 따른 예외 조항도 포함돼 있다.
- “Continuing to Protect~”도 마찬가지로 각 부처가 시민권 관련 문서(여권, 출생증명서 인정 등) 발급 지침을 자체적으로 손봐야 실무에 반영된다.
- 참고로 2025년 EO 14160의 경우, 국무부가 실제 이행계획(여권 발급 절차 변경 등)을 마련하는 데만 6개월 이상(2025년 7월) 걸렸고, 그마저도 법원의 집행정지 명령으로 실행되지 못한 채 대법원 판결까지 보류된 전례가 있다.
예상되는 다음 단계
- 연방관보 게재 — 서명된 문서가 며칠 내로 연방관보에 공식 게재되며, 이는 공식 대외 공표 절차다.
- 부처 시행지침 마련 — 국무부·국토안보부가 영사관·출입국 현장에 적용할 세부 지침을 확정하는 데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 소송 제기 및 가처분 신청 — 이민 단체·주정부 등이 위헌 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에 예비적 금지명령(가처분)을 신청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2025년 EO 14160은 서명 사흘 만에 법원의 임시 차단을 받은 전례가 있다.
- 법원의 판단 — 가처분이 인용되면 명령은 법적으로 유효한 채로 집행만 정지된다. 이후 본안 소송이 진행되며, 이번에도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거론된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가 지난 6월 대법원 판결이 인정한 ‘예외’ 범위 안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두고 법정에서 다시 다퉈질 것으로 보인다.
관련 소식
- 텍사스주 독자 행동: 그렉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지난달 21일 원정출산 알선을 단속하는 자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병원·의료진이 임산부의 체류 신분을 확인해야 할 수 있어 일부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산모와 태아의 안전을 우려하고 있다.
- 의회 입법 시도: 대법원 판결 이후 여러 의원이 출생시민권 제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다수의 헌법 전문가는 단순 법률 개정으로는 수정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바꿀 수 없다고 지적한다.
- 법적 공방 예상: 백악관은 이번 조치가 대법원 판결 취지와 상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시민권 보호 단체와 이민법 전문가들은 서명 직후부터 새로운 소송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