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미국 가정의 의료비 부담이 2027년 한꺼번에 커질 전망이다. 직장을 통해 가입하는 보험부터 오바마케어(ACA) 마켓플레이스, 노년층이 이용하는 메디케어까지 거의 모든 건강보험 경로에서 보험료와 공제액, 본인부담금이 동시에 오르기 때문이다.
글로벌 보험 컨설팅 업체 머서(Mercer)가 미국 기업 1,800여 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직원 1인당 건강보험 비용은 2027년 평균 8.2%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인상이며, 5년 연속 이어지는 이례적인 비용 상승 추세다. 이 수치는 기업들이 계획 중인 비용 절감책을 이미 반영한 것으로, 별다른 조치가 없다면 실제 비용 상승률은 11%에 달할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기업이 부담을 그대로 떠안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원 500명 이상 대기업의 3분의 2가 근로자 부담 보험료를 인상할 계획이어서, 급여에서 실제로 빠져나가는 금액은 평균치인 8.2%보다 더 가파르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사에 참여한 기업의 59%는 공제액 인상 등 보험 혜택 자체를 조정해 비용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비용 상승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병원 등 의료기관들이 대형 의료시스템으로 통합되면서 보험사와의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점, 값비싼 신약과 항암제·희귀질환 치료제의 등장, 그리고 비만치료제(GLP-1 계열) 사용 급증이 대표적이다. 머서 측은 GLP-1 계열 약물 사용 증가만으로도 2027년 전체 비용 상승분 중 1%포인트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AI 기반 진료 지원 소프트웨어 확산으로 의료 청구 건수와 금액이 함께 늘어난 점도 새로운 상승 요인으로 지목됐다.
오바마케어, 보험사들 15% 인상 요청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ACA 마켓플레이스 보험의 상승 폭은 더 가파르다. 비영리 보건정책 연구기관 KFF가 미국 50개 주와 워싱턴DC의 보험사 276곳이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7년 보험료 인상 요청안의 중간값은 15%로 집계됐다. 다만 이는 보험사들이 규제당국에 제출한 ‘요청안’으로, 최종 승인되는 인상률과는 차이가 날 수 있다.
인상 배경에는 팬데믹 시기 도입됐던 보조금 제도의 종료가 있다. 이 보조금은 중산층 가입자의 월 보험료 부담을 크게 낮춰왔는데, 지원이 끊기면서 많은 가입자가 더 비싼 보험료를 내거나 보장 범위가 낮은 플랜으로 갈아타야 했다. 그 여파로 ACA 전체 가입자 수는 약 300만 명 줄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보험료에 민감한 젊은 층의 이탈이 두드러지면서, 남은 가입자 집단의 평균적인 의료 이용 필요도가 높아졌고 이 역시 2027년도 보험료 산정에 반영됐다.
전문가들은 오픈 인롤먼트(연례 가입 기간) 동안 월 보험료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플랜에 따라 공제액(디덕터블)과 진료비·처방약 본인부담금(코페이) 구조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총비용 관점에서 여러 플랜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메디케어도 예외 아냐… 처방약 부담 상한 300달러 인상
노년층이 주로 이용하는 메디케어 역시 부담이 커진다. 미국 연방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서비스센터(CMS)는 2027년도 파트D(처방약 보험) 관련 수치를 이미 확정했다. 표준 공제액은 2026년 615달러에서 2027년 700달러로, 연간 본인부담 상한액은 2,100달러에서 2,400달러로 각각 오른다. 전국 기준 수혜자 보험료는 월 41.33달러로 확정됐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 파트D 월 보험료 상승을 억제해온 ‘파트D 보험료 안정화 시범사업’을 예정보다 1년 앞당겨 2026년도를 끝으로 종료하기로 하면서, 2027년 파트D 월 보험료가 추가로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외래 진료를 보장하는 파트B의 표준 보험료는 아직 공식 발표 전이지만, 2026년 메디케어 신탁기금 보고서 기준 월 209.50달러(2026년 202.90달러 대비 인상)로 추정된다.
다만 긍정적인 소식도 있다. 정부가 제약사와 협상한 2차 협상 대상 처방약 15개 품목의 인하된 가격이 2027년 1월 1일부터 적용되는데, 평균 인하 폭은 정가 대비 약 44%에 달한다. 세마글루타이드(비만·당뇨 치료제) 계열 약물과 트렐레지 엘립타, 린제스, 아이브랜스, 젠텔리자, 오스테도 등 널리 쓰이는 약물이 포함돼 있다. 다만 협상가 인하가 곧바로 개인의 본인부담금 인하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실제 부담액은 가입한 플랜의 보장 목록(포뮬러리) 등급과 공제액, 보장 단계에 따라 달라진다.
2025년 직장보험료는 이미 역대 최고 수준
이번 인상은 이미 높은 수준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2025년 기준 직장보험의 연평균 보험료는 개인 가입자 9,325달러, 가족 가입자 2만6,993달러에 달했다. 가족보험료 중 근로자가 실제로 부담한 금액은 평균 6,850달러였다.
미국 인구 중 약 1억6,500만 명이 직장을 통해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만큼, 이번 인상은 광범위한 가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임금 인상분이 인플레이션이나 세금보다도 건강보험료 인상에 더 많이 잠식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보험 가입자들에게 다가오는 오픈 인롤먼트 기간 동안 단순 보험료뿐 아니라 공제액, 본인부담금, 처방약 보장 범위를 꼼꼼히 비교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