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 미국 정부가 이민법원의 판사 직책 명칭을 ‘immigration judge’ 에서 ‘deportation judge(추방 판사)’로 사실상 변경하며, 대대적인 판사 충원에 나섰다. 이번 조치는 이민자 대량 추방 정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핵심 전략으로 해석된다.
지난 11월, Executive Office for Immigration Review (EOIR, 이민사법심사국)은 “Deportation Judge 모집”이라는 제목으로 전국 70여 곳에서 신규 채용을 공고했다. 제안된 연봉은 연 159,951달러에서 207,500달러로 기존 이민판사 평균보다 높다. 일부 광고에는 원격 근무 가능성까지 명시돼 있어, 많은 법률 전문가의 지원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점, 수십 명의 기존 이민판사들이 해고되거나 퇴직했으며, 일부는 퇴직이 부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뉴욕시에서는 최근 8명의 이민판사가 한꺼번에 해고됐고, 이로써 핵심 법원 중 하나인 26 Federal Plaza의 이민재판부 인력 25%가 사라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문제는 명칭 변경이 단순한 인사 정책이 아니라 이민 사법 제도의 성격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로 보인다는 점이다. DOJ의 모집 광고는 “미국 이민법원 시스템에 명예와 정직성을 회복하라”는 문구를 사용하며, 추방이 “법원의 주요 기능”임을 강조한다. 이는 기존의 난민 심사, 망명 신청, 체류 허가 심사 등은 축소하고, 추방 결정 중심의 재판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 같은 변화는 이미 시작된 해고와 재충원을 넘어, 제도의 본질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민자 권리 단체와 변호사들은 “공정한 재판보다는 속전속결 추방”이 가능해진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많은 이민자들이 법적 심판을 기피하고 법원을 피하려는 경향이 커져, 심사 없이 추방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민법원 판사는 원래 독립적으로 피고(이민자)의 체류 권리를 심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번 재편으로 판사의 사법 독립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추방 판사’라는 명칭만으로도 많은 이민자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할 수 있어, 일부는 소명 절차를 포기하거나 재판 출석을 회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심사 없이 추방되는’ 사례가 늘어날 위험으로 이어진다. 아울러, 이번 재편으로 빠르게 채용되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판사들이 사건을 처리할 경우, 심층적 심사 없이 단순한 논리에 따라 추방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번 변화는 단순한 인사정책이 아니라, Donald J. Trump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가속되고 있는 ‘대량 추방(mass deportation)’ 정책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전략의 핵심이다. 기존 이민법원이 망명 신청, 난민 보호, 체류 허가 등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장기적인 절차를 다루는 사법 시스템이었다면, 이번 조치는 이런 절차를 배제하고 “추방 결정 신속화 + 인력 확보”에 방점을 둔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수백만 명의 이민자 체류 문제를 법원의 느린 심리 과정에 맡기지 않고, 보다 통제 가능하고 빠른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대가는 사법 독립성과 이민자의 권리 보호 즉, 미국의 법치주의, 인권, 난민 보호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미 전역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선엽 기자>
사진설명: 샌프란 시스코에 위치한 제임스 R. 브라우닝 미국 연방항소법원 건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