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미국 정부가 47년간 유지해온 외국인 유학생의 ‘무기한 체류’ 관행에 마침표를 찍는다. 학업을 마칠 때까지 사실상 기한 없이 머물 수 있었던 지금까지의 방식 대신, 입국 시점부터 체류 종료일을 못 박는 방식으로 제도가 전면 개편된다.
미국 국토안보부(DHS)는 16일 유학생(F), 교환방문자(J), 외신 종사자(I) 비자 소지자에게 적용해온 ‘체류자격 유지(Duration of Status·D/S)’ 제도를 폐지하는 최종 규정을 발표했다. 새 규정은 17일 연방관보에 게재되며, 게재 60일 뒤인 9월 15일부터 시행된다.
지금까지 F-1 학생비자 소지자는 입국 시 I-94 기록에 구체적 만료일 대신 ‘D/S’ 표시를 받아왔다. 학교에 정상 등록돼 있고 비자 규정을 준수하는 한, 학사에서 석·박사로 진학하거나 연구 일정이 늘어나도 별도 체류 연장 없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새 규정에서는 이 방식이 사라진다. 입국 심사 단계에서 I-20(재학증명서) 또는 DS-2019(교환방문자 자격증명서)에 기재된 프로그램 종료일과 4년 중 더 짧은 기간이 체류 허가 기한으로 확정된다. 4년 이내에 마칠 수 있는 학사·석사 과정 유학생은 큰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통상 5~7년이 걸리는 박사과정이나 의대 레지던시 등 장기 프로그램 참여자는 최소 한 차례 이상 미국 이민국(USCIS)에 별도 체류연장(Extension of Stay, Form I-539)을 신청해야 한다. 연장 신청이 반려될 경우 이후 유예기간 없이 곧바로 불법체류 신분이 될 수 있다.
졸업 후 출국을 준비하거나 신분 변경을 신청할 수 있는 유예기간도 기존 60일에서 30일로 절반 줄었다.
이미 미국에 체류 중인 학생과 교환방문자도 예외가 아니다. 규정 시행일 현재 D/S 신분인 F·J 비자 소지자는 기존 프로그램 종료일과 시행일로부터 4년이 되는 날 가운데 먼저 도래하는 날까지만 체류가 인정되는 경과조치가 적용된다. 외신기자 대상 I비자 소지자는 시행일부터 최대 240일(중국 국적 언론인은 90일) 체류가 허용된다. 어학연수(ESL) 과정은 누적 24개월로 상한이 설정됐다.
마크웨인 멀린 국토안보부 장관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가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이민 사기를 조장해 왔다”며 “외국인 학생들이 학업을 마친 뒤 본국으로 돌아가는 본래 목적에 집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DHS는 체류기간을 명확히 설정하면 비자 소지자의 자격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규정 준수 여부를 더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안보부에 따르면 2024회계연도 기준 미국은 180만 건 이상의 학생비자 입국을 승인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11%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교환방문자는 50만 명, 외국 언론인은 3만7300명에게 비자가 발급됐다.
반면 대학가와 이민 전문가들은 행정 부담과 불확실성 확대를 우려한다. 국제교육 전문기구 NAFSA는 이번 개편으로 대학 국제학생담당관(DSO)·책임자(RO)들의 교육·적응 비용만 업계 전체 첫해에 933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미국 내 거의 모든 박사과정과 의료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4년을 넘어서는 만큼, 이공계·의학계열 대학원생 상당수가 학위 취득 전 최소 한 번은 연장 심사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학교가 직접 처리하던 연장 업무가 연방 심사로 넘어가면서 절차가 복잡해지고 승인 여부의 불확실성도 커졌다는 지적이다.
이 규정은 2025년 8월 처음 발표된 이후 3만4800여 건의 공청 의견을 받았는데, 절대다수가 반대 의견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DHS는 원안에서 큰 수정 없이 최종 규정을 확정했다. 이번이 처음 시도되는 것도 아니다. 1기 트럼프 행정부도 2020년 같은 취지의 규정을 추진했으나 소송 등 반발에 부딪혀 시행하지 못한 채 무산된 전례가 있다.
한국인 유학생 1만3000여명 영향권…”학업 계획 재검토 불가피”
주미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2025년 기준 F-1 학생비자로 미국에 체류 중인 한국인 유학생은 1만1861명, 가족 자격인 F-2 비자 소지자는 1347명으로 총 1만3000여명이 이번 조치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간다. 일부 국내 매체는 학생과 동반가족을 합쳐 2만4000여명 규모로 추산하기도 했다.
당장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인 학생은 물론, 이미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재학생들도 계획을 다시 짜야 할 상황이다. 전공 변경이나 복수전공, 학사에서 대학원으로의 진학 등으로 학업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 체류 연장 심사를 새로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도 역시 자국 유학생 33만 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어, 아시아권 유학생 밀집 국가들의 셈법이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이민 전문 로펌들은 이번 개편이 미국 유학생 비자 제도 사상 수십 년 만의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하며, 향후 소송이나 의회 검토(Congressional Review Act) 절차에 따라 시행 일정이 조정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지역 한 유학원 관계자는 “유학생 비율이 높은 USC, UCLA 등 대학가에서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라며 “9월 시행 전까지 재학생들은 자신의 I-94 만료일과 프로그램 종료 예정일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