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발기부전 치료제로 잘 알려진 비아그라(성분명 실데나필)가 암세포의 전이를 억제하는 새로운 생물학적 경로를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지혈증 치료제인 스타틴과 병용할 경우 암 전이 억제 효과가 더욱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아옐렛 에레즈(Ayelet Erez) 교수 연구팀은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클라릿(Clalit) 보건서비스, 라빈 메디컬센터 연구진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를 국제학술지 ‘캔서 리서치(Cancer Research)’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실데나필이 포스포디에스테라제5(PDE5) 효소를 억제해 세포 내 신호전달물질인 cGMP 농도를 높이는 과정에 주목했다. 이 과정에서 cGMP가 세포 안 콜레스테롤 운반 단백질과 결합해 콜레스테롤을 세포 내 소기관인 라이소좀에 가두는 새로운 경로가 발견됐다.
암세포가 원발 종양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장기로 이동할 때 세포막을 유연하게 만드는 콜레스테롤을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데, 실데나필이 이 보급로를 차단하면서 전이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유방암, 폐암, 대장암 마우스 모델과 사람 암세포 배양 실험에서 실데나필 투여군의 전이 및 이동성이 감소한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콜레스테롤 자체 합성을 억제하는 스타틴과의 병용 투여 실험도 진행했다. 실데나필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콜레스테롤 활용을 막고, 스타틴이 세포가 스스로 만드는 콜레스테롤 합성을 차단함에 따라 두 약물을 함께 투여했을 때 암세포의 전이 억제 효과가 단독 투여 시보다 크게 향상됐다.
이 같은 결과는 대규모 보건 데이터 분석에서도 뒷받침됐다. 연구팀이 클라릿 회원 약 500만 명의 20년 치 의료기록 중 암 진단 전 실데나필을 3회 이상 처방받은 남성 환자 약 4만 명을 분석한 결과, 실데나필과 스타틴을 모두 복용한 환자군은 두 약을 모두 복용하지 않은 환자군에 비해 진단 후 5년 내 사망 위험이 31% 낮았다.
에레즈 교수는 “신호전달물질과 세포 내 콜레스테롤 조절을 연결하는 새로운 생물학적 경로를 발견했다”며 “암 생물학이 종양세포의 돌연변이뿐 아니라 환자의 대사 상태 및 복용 중인 다른 치료제에 의해서도 영향받는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세포·동물 실험 및 후향적 관찰 연구에 기반한 만큼 임의 복용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인간 대상의 전향적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을 거치지 않아 곧바로 치료제로 처방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 역시 실데나필이 저혈압 및 심혈관계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고 니트로글리세린 등 심장 질환 치료제와 병용 시 위험할 수 있으므로, 주치의 상담 없는 자가 복용을 삼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