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겔라균 일러스트. 시겔라는 막대 모양 세균으로, 단 10마리만 몸에 들어와도 감염될 만큼 전파력이 강하다. (사진=AI 생성 일러스트)
[애틀랜타, GA=김선엽 기자] 미국에서 흔히 쓰는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시겔라균에 의한 세균성 이질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먹는 약으로 치료할 길이 사실상 막힌 이 상황을 공중보건 위협으로 경고하면서 감염 예방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시겔라증은 시겔라균이 일으키는 세균성 이질이다. 감염되면 보통 1~2일 뒤 설사와 발열, 복통이 시작되고, 3일 넘게 이어지는 설사나 피가섞인 설사가 나타날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26년 4월 9일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내성 검사가 이뤄진 시겔라 분리주 가운데 5가지 항생제에 모두 내성을 가진 XDR 시겔라 비율은 2011~2015년 0%에서 2023년 8.5%까지 치솟았다. 전체 감염 추정 건수가 아니라, 검사된 분리주 안에서의 비율이다.
0%에서 8.5%로… 3명 중 1명 넘게 입원
CDC는 2011년 1월 1일부터 2023년 10월 20일까지 펄스넷(PulseNet)에 보고된 분리주 16,788건을 분석했다. 전체 기간 XDR로 확인된 것은 510건(3.0%)이었으며, 첫 XDR 분리주는 2016년에 나왔다. 전체 XDR 사례의 84.3%가 2022~2023년에 집중됐다. 다만 8.5%는 전체 감염 추정 건수가 아니라, 2023년에 내성 검사가 된 분리주 안에서의 비율이다.

XDR 시겔라는 암피실린, 아지스로마이신, 세프트리악손, 시프로플록사신, 트리메토프림-설파메톡사졸 등 5가지 항생제에 모두 내성을 가진 경우를 말한다. 이 가운데 세프트리악손은 먹는 약이 아니라 주사용 항생제다. CDC가 문제로 삼는 핵심은, 이 XDR 감염에 쓸 수 있는 FDA 승인 경구용 항균제가 현재 없다는 점이다. 피브메실리남, 포스포마이신, 먹는 카바페넴계 약물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2025년 기준 어느 것도 시겔라증 치료용으로 FDA 승인을 받지 못했고, 아직 확립된 최적 치료법도 없다.
환자는 성인 남성 중심… 해외여행 없이도 감염
연령·성별 자료가 있는 XDR 환자 492명 중 절반이 41세를 넘였고, 96.1%가 18세 이상 성인, 86.2%가 남성이었다. 입원 자료가 있는 환자 중에서는 37.6%가 병원에 입원했다. 이는 CDC가 요약한 “약 3명 중 1명”보다 조금 더 높은 비율이다.
여행 이력이 있는 환자만 따로 보면, 76.2%는 최근 국내 여행이 없었고 82.4%는 최근 해외여행이 없었다. CDC는 여행 정보가 전체 환자의 절반가량에서 빠져 있다는 점을 함께 밝히면서도, 확인된 사례만 놓고 보면 해외 유입보다 미국 안에서 퍼진 정황이 크다고 해석했다. HIV 감염 여부가 확인된 116명 중에서는 46.6%가 HIV 동시 감염을 보고했지만, 이는 전체 환자가 아닌 일부 자료에 그친 수치다.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이유
이번 달 들어 미국과 영국 언론이 이 문제를 다시 크게 다룬 배경에는 두 가지 연구가 겹쳐 있다. 하나는 위의 CDC 분석이고, 다른 하나는 2026년 7월 국제학술지 ‘랜싯 감염병(The Lancet Infectious Diseases)’에 실린 영국 연구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영국보건안전청(UKHSA) 연구진은 영국에서 성 접촉으로 퍼지는 시겔라가 더 빨리 확산하고 내성도 더 빨리 얻고 있다고 밝혔다. “치료가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강한 표현은 주로 이 영국 연구 쪽에서 나왔다.
미국 언론의 10월 보도는 새로운 CDC 발표가 아니라, 이 두 연구를 묶어 다시 전한 것에 가깝다. FOX 계열과 사이언스얼러트, 뉴욕포스트 등이 10월 8~9일 같은 내용을 잇달아 내보냈고, 오하이오 지역지 콜럼버스 디스패치는 10월 9일 오하이오주에서 2026년 들어 시겔라증이 360건 보고됐다고 전했다. 다만 이 360건은 약제내성이 확인된 사례가 아니라 오하이오 전체 시겔라증 신고 건수다.
증상과 감염 경로
시겔라에 감염되면 보통 1~2일 뒤 증상이 시작돼 약 7일간 이어진다. 설사에 피가 섞여 있거나 3일 넘게 길어지는 설사, 열, 복통, 배가 비었는데도 변을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항생제 없이 5~7일 안에 회복하지만, 탈수를 막기 위해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 CDC는 설사를 멎게 하는 지사제(로페라마이드 등)는 시겔라 감염에 쓰지 말라고 권고한다.
전파 경로는 대변-구강 감염이다. 감염자의 대변에 닿은 손, 오염된 음식과 물, 오염된 물건을 통해서도 옮고, 아픈 사람과의 성 접촉으로도 퍼질 수 있다. 균 10마리만으로도 감염될 만큼 적은 양으로 병이 생기는 점이 이 균의 무서운 대목이다.
누가 더 조심해야 하나
원래 시겔라증은 5세 미만 어린이와 어린이집·학교 같은 집단시설에서 흔했다. 여기에 해외여행자, 노숙을 겪는 사람, 면역이 떨어진 사람과 HIV 감염인, 그리고 대변에 닿을 수 있는 성 접촉이 있는 남성 동성애자·양성애자 등이 고위험군으로 꼽힌다. 특히 면역이 약한 사람은 쓸 수 있는 약이 제한된 상황에서 중증으로 갈 위험이 더 커 CDC가 각별히 주의를 당부했다.
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 한인 독자가 알아둘 점
2026년 10월 9일 현재 조지아주 보건부(DPH)나 노스캐롤라이나주 보건복지부(NCDHHS)에서 시겔라 약제내성과 관련한 별도 환자 수나 주의보는 확인되지 않았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오히려 같은 해 기생충인 사이클로스포라 감염이 크게 보도됐는데, 이는 시겔라와는 전혀 다른 병이다. 음식(주로 농산물)을 통해 감염되고 사람 사이 직접 전파는 드물다. 올해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본 “폭발적 설사” 헤드라인 상당수는 이 사이클로스포라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커, 시겔라 기사와 헷갈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CDC 예방 수칙 — 이것만은 지키자
비누로 20초 이상 손 씻기 — 화장실 사용·기저귀 교체 후, 음식 준비·식사 전에는 반드시
아이가 설사를 하면 어린이집·학교·단체활동 보내지 않기
기저귀는 뚜껑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기저귀 가는 곳은 소독하기
수영장·호수 등 여가용 물은 삼키지 않기, 설사가 멎기 전까지 수영 자제
아픈 동안 다른 사람 음식 준비하지 않기
성 접촉과 관련한 CDC 당부
피가 섞인 설사나 3일 넘게 이어지는 설사가 있으면 성 접촉을 피하고, 설사가 끝난 뒤에도 최소 2주가 지난 뒤에 관계를 갖는 것이 권고된다. 대변에는 설사가 멎은 뒤에도 최대 2주간 시겔라가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 접촉 전후에는 손과 성기, 항문 부위를 비누로 씻고, 콘돔 등 차단 도구와 장갑 사용, 성기구 세척도 함께 당부된다.
CDC는 이번 수치가 실제보다 적게 잡혔을 가능성도 함께 밝혔다. 모든 환자의 균이 배양·검사되는 것은 아니고, 검사 건수 자체도 해마다 달라 전체 감염 규모를 이 비율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방향 자체는 분명하다. 약이 듣는 시겔라가 차지하던 자리에, 먹는 약으로는 손쓸 길 없는 시겔라가 빠르게 들어서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