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체류자 추방에 그치지않고 한발 더 나아가 미국에 귀화한 시민권자들을 타깃으로 이들의 시민권을 박탈(denaturalization)할 구체적인 계획이 담긴 지침서를 이미 제작해 조만간 실행에 옮길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지침은 미국 시민권·이민국(USCIS)의 현장 사무소에 배포됐으며, 2025년 10월~2026년 9월까지인 2026 회계연도 동안 매달 평균 100~200건의 시민권 박탈 케이스를 추려 법무부 이민소송국(Office of Immigration Litigation, OIL)에 제공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목표치는 규모면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목표치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이후 현재까지 제기된 시민권 박탈 사건은 약 120건에 불과했다. 한 해 전체 기준으로도 10건 내외였던 과거 통계에 비춰볼 때, 새로운 목표는 사실상 미국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시민권박탈 계획이 추진 됨을 의미한다.
USCIS는 “불법적으로 시민권을 취득했거나 귀화 신청 과정에서 거짓 정보를 제공한 경우에 대해 우선적으로 denaturalization 절차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슈 트라게서 USCIS 대변인은 “그간의 사기 행위를 막고 이민제도의 투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법무부 또한 올 여름에 내부 메모를 통해 denaturalization을 우선순위 사안으로 지정하고, 갱단 연루자, 금융 사기, 마약 카르텔 연관자, 중범죄자 등 법적 요건에 해당하는 다양한 범죄 범주를 포함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연방법에 따르면 시민권 박탈은 연방 법원 판결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행정 명령이나 단독 정부 조치로 이루어질 수 없다. 시민권 박탈 사유로는 귀화 과정에서의 사기, 중대한 사실 은폐, 허위 진술 등이 법적으로 규정돼 있다.
한편 이번 지침은 미국 내에서 크게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낳고 있다. 이민 규제 강화를 지지하는 보수 성향 그룹과 인사는 “부정한 방법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경우 적절히 단속하는 것은 국가 안보·법질서 유지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현재까지 denaturalization이 너무 드물어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를 걸러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반면 이민자 권리 단체와 전 이민국 관계자들은 높은 목표가 시민권 박탈 절차의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높이고, 법적 근거가 약한 사례까지 포함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월별 목표 자체가 과거 연간 전체 사건 수보다 10배 이상 많은 수치를 요구하는 것은 “귀화 시민 전체의 불안과 공포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한 시민권 박탈 절차는 고도의 법적 입증이 필요한 과정으로, 실제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도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성공적인 박탈 판결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 그쳤다.
시민권 박탈은 민사 또는 형사 절차를 통해 진행될 수 있으며, 정부는 법적 소송에서 “명백한 증거(unequivocal evidence)”로 해당 시민권이 불법적으로 취득됐음을 입증해야 한다. 이 과정은 수년이 걸릴 수 있고, 연방 법원의 판결로 최종 결정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침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시민권 박탈로 이어질지는 연방 법원의 판단과 소송 진행 속도에 달려 있다고 분석한다. 단순히 지침이 발표됐다고 해서 모든 목표가 달성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국에는 약 2,600만 명 이상의 귀화 시민이 있으며, 매년 수십만 명이 시민권을 취득하고 있다. 지난해만도 80만 명 이상이 귀화 선서를 했다. 주요 출신지는 멕시코, 인도, 필리핀, 도미니카공화국, 베트남 등이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반적인 이민규제 강화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이 전략에는 남부 국경의 난민·망명 제한, 특정 국가 출신 여행자에 대한 입국 금지 확대, 합법 이민 축소 정책 등이 포함돼 있다.
시민권 박탈 확대 정책이 실제 입법 절차나 법원 판례와 충돌할 수 있다는 법적 논쟁도 예상되며, 향후 정치 및 법적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선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