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목사님이 말 못 할 고충을 저에게 토로하셨습니다. 한 여자 집사님이 자신에게 퉁명스럽고 짜증 섞인 태도로 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 여집사님은 목사님의 말투, 표정, 작은 손짓 하나까지도 마음에 안 들고 기분이 나쁘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여집사님은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목사님의 표정, 말투, 생김새, 제스처가 아버지를 꼭 연상시킨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저희 아버지를 너무 많이 닮으셨어요.” 처음에는 본인도 왜 그렇게 목사님이 미운지… 나중에 알았습니다. 어릴적 아버지로부터 늘 잔소리와 비난만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예뻐하지 않았고 가정을 돌보지도 않았습니다, 술 마시면 늦게 들어오고, 가정은 시끄러웠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쓴 마음’이 무의식 가운데 자리 잡았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와 비슷하게 생긴 애꿎은 목사님만 당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그냥 품어주셔야죠….아버지에게 분노하는 것인데요. 마음을 안아 주셔야죠”라고 조언을 드렸습니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왜곡된 거울’이 되곤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전이(transfer)’라고 합니다.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중 하나입니다. 내 감정은 지금 눈앞에 있는 목사님을 향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너머에 있는 옛 아버지를 향해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뇌과학에서 사람은 경험을 통해 뇌의 신경 회로가 형성이 되는데 이는 무의식으로 저장이 되고, 무의식은 대상을 구별하는 눈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우리 뇌(brain)는 생존과 자기방어를 위해 무의식이 비상벨을 울리는 것입니다. 심한 경우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때 아무 감정이 없고, 하늘 아버지와 관계가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도 않습니다.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연상작용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하늘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것이 매우 불편합니다. 감정은 본래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본능적으로 반응합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을 보고도 놀란다는 말은 기가막힌 명언입니다. 비슷한 사람이나 비슷한 상황 속에서는 비슷한 반응과 관계의 패턴을 되풀이 하니까요. 한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떠난 사람은 다른 교회에 가서도 비슷한 관계를 반복하고 상처를 받습니다. 이혼 이후에 치유되지 않은 마음으로 재혼을 하면 전남편에 대한 감정을 혼동(transfer)하기 때문에 관계가 어려워지고는 합니다. 권위적인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으면 필요한 권위조차 과도하게 거부합니다.
저의 선친은 일제시대와 공산치하를 겪은 실향민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와 상관없는 경우도 공산주의와 연상되면 힘겨워하며 분노하셨습니다. 사람의 감정과 경험은 현실을 과장하며 왜곡시킵니다. 비슷한 상황, 비슷한 이름만 들어도, 사람의 뇌는 잘 구별을 못한다고 뇌과학에서는 이야기를 합니다. 상처(트라우마)는 시도 때도 없이 비상 사이렌을 울리기 때문에 상처입은 감정은 반드시 치유가 되어야 합니다.그래야 관계가 풀립니다. 무의식은 가정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집단적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특히 무의식의 작동은 결혼 생활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어릴적 자라온 가정환경 (원가족 세팅)의 익숙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그때와 비슷한 감정과 반응을 반복하곤 합니다. 만약 친정아버지가 무책임한 사람이었다면, 아내는 남편의 작은 실수나 연약함을 볼 때마다 ‘남편도 아버지처럼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아버지가 바람을 핀 경우에는 남편의 작은 행동을 바람을 피우려는 싸인으로 오해하고, 바람을 필지 모른다는 무의식적 두려움에 과도하게 분노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의 상처를 품어주며 따뜻하고 긍정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해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남편의 사랑을 통해 과거 아버지에게 받았던 트라우마는 서서히 녹아 내리는 것입니다. 아내는 비로소 남편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뇌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하며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문제는 완벽한 가정, 온전한 남편은 세상에 한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십자가의 은혜가 있는 곳에, 성령님만이 온전히 치유하십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모두 하나님을 선하고 자비로우신 아버지로 경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시는 하늘 아버지를 깊이 만나면 좋겠습니다.생명을 내어주시도록 우릴 사랑하는 진정한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아담적 상처가 치유되며 관계적인 문제가 풀려지니까요. 주께서 우리 안에 숨겨진 상처, 상한 감정과 무의식까지 치유해 주셔서 가정을 온전히 회복해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