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Voice Today=김선엽 기자]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벌어진 ‘국가 연주 중 손찌검’ 사건이 미국 스포츠·사회 전반에 걸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건의 전말과 당사자의 뒤늦은 고백, 그리고 예상 밖의 화해까지, 영상 하나가 촉발한 파장은 며칠 새 전혀 다른 국면으로 흘러갔다.
지난 19일 시카고 컵스와 미네소타 트윈스의 경기를 앞두고 리글리필드에서는 여느 때처럼 국가 연주가 울려 퍼졌다. 대부분의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선 가운데, 한 젊은 남성은 자리에 앉은 채 국가를 들었다. 뒷자리에 있던 나이 든 남성은 그를 향해 일어서라고 소리쳤고, 몇 초 뒤 몸을 숙여 귓속말을 건넨 다음 젊은 팬의 뒤통수를 손으로 내리쳤다.
젊은 팬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가해 남성은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이 장면이 담긴 영상은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고, “국가 연주 중 앉아 있는 것이 잘못이냐, 아니면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느냐”는 해묵은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나는 베트남전 참전용사다”
영상이 확산되자 미국 언론들은 가해자의 신원을 추적했고, 이내 로버트 ‘밥’ 셔베즈라는 이름이 공개됐다. 시카고 인근 힌즈데일에 거주하는 그는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전쟁에서 다수의 전우를 잃었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 연주 전 이미 젊은 팬에게 자신의 참전 경험과 사연을 들려주며 기립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손을 댔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가 인사이드 에디션과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발언이 예상 밖의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전쟁터에서 친구들을 잃었음에도, 정작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것은 국민 개개인의 권리였으며, 젊은 팬이 앉아 있던 것 역시 그 권리 중 하나였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 스스로 상대방의 ‘앉을 권리’를 인정한 셈이어서, 여론은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10분, 그리고 맥주 한 잔
셔베즈는 바이럴 영상에 담기지 않은 뒷이야기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슬랩이 있기 전,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10분가량의 대화가 오갔다. 그는 자신의 참전 이력과 전쟁 당시 이야기를 젊은 팬에게 들려주었지만, 상대는 계속 앉아 있었다고 전했다.
사건 이후 두 사람은 자리를 지킨 채 대화를 이어갔고, “왜 그랬느냐”, “왜 안 했느냐”는 식으로 서로의 입장을 확인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경기 도중 젊은 팬이 셔베즈에게 차가운 맥주 한 잔을 건넸고, 두 사람은 국가에 대해 각자 어떤 의미를 느끼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앙금을 풀었다. 구단 보안 요원이 셔베즈를 퇴장시키려 하자, 정작 피해를 본 젊은 팬이 직접 나서 문제가 없다며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카고 컵스 구단 측도 TMZ를 통해 공식 입장을 내놨다. 구단은 국가 연주가 경기의 중요한 전통이며 가능하다면 기립과 모자 탈모를 권장하지만, 개인의 선택권 역시 존중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동시에 팬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꼽으며, 보안팀이 피해 팬과 직접 대화한 결과 그가 사건 종결과 추가 조치 불원(不願) 의사를 밝혀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갈라진 여론, 그러나 당사자는 후회
사건을 둘러싼 여론은 크게 엇갈렸다. 일부에서는 참전용사의 행동을 애국심의 발로로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온 반면, 다수의 매체와 누리꾼들은 어떤 이유로도 신체적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정작 셔베즈 본인은 최근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자책하며, 손을 댄 직후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순간의 분노로 시작된 사건은 결국 두 사람의 화해와 대화로 마무리됐지만, ‘국가 연주 중 기립’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해묵은 논쟁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