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김선엽 기자] —알츠하이머병 증상이 나타나기 수십 년 전, 혈액 검사만으로 구체적인 발병 시점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St. Louis) 연구진은 지난 19일, 혈중 단백질인 ‘p-tau217’ 수치를 분석해 향후 인지 기능 저하가 시작될 시기를 3~4년 오차 범위 내로 예측하는 ‘혈장 시계(Plasma Clock)’ 모델을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국립보건원(NIH) 바이오마커 컨소시엄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연구진은 600명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최대 10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뇌 내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일정한 패턴으로 쌓인다는 점에 착안해 발병 시기를 수치화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 모델에 따르면 p-tau217 수치가 상승하기 시작한 연령이 낮을수록 실제 증상 발현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었다. 구체적으로:
60세에 수치가 상승하면 약 20년 후 증상 발현 가능성
80세에 수치가 상승하면 약 11년 후 증상 발현 가능성
이는 젊은 뇌가 노년기 뇌보다 신경 퇴행에 대한 저항력이 더 높음을 시사한다. 연구 책임자인 수잔 쉰들러(Suzanne E. Schindler) 박사는 “혈액 검사는 고가의 PET 스캔이나 고통을 동반하는 척수액 검사보다 훨씬 저렴하고 접근성이 좋다”며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 진단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 내 알츠하이머 환자는 약 720만 명에 달하며, 인구 고령화에 따라 그 숫자는 급증하고 있다. 이번 기술은 특히 임상시험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공동 저자인 켈렌 피터슨(Kellen K. Petersen) 박사는 “임상시험 대상을 선별할 때 증상이 곧 나타날 사람들을 정확히 찾아내면 시험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며 “나아가 개인 맞춤형 예방 치료 시점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실제 임상 현장에 널리 보급되기까지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 분석 기술이 의료 데이터와 결합하면서, 혈액 검사 한 번으로 치매를 예방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연구진은 누구나 이 예측 모델을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웹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공개했으며, 향후 다른 바이오마커를 추가해 예측 정밀도를 더욱 높일 계획이다.
한편 이번 연구 소식에 그린스보로를 포함한 노스캐롤라이나 피드먼트 트라이에드(Piedmont Triad) 지역 주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지역은 세계적인 수준의 치매 연구 인프라가 구축된 곳으로, 최신 진단 기술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현재 콘 헬스 알츠하이머 센터(Cone Health Alzheimer’s Center)가 그린스보로 현지에서 정밀 진단을 제공하고 있으며, 인근 윈스턴셀럼의 웨이크 포레스트 알츠하이머병 연구 센터(Wake Forest ADRC)에서는 이번 연구에서 활용된 혈액 검사 기반의 임상시험에 참여할 무증상 지원자를 모집 중이다. 또한 더럼 소재의 듀크-UNC 협력 센터 역시 신약 개발 및 조기 진단 분야의 중심지로 꼽힌다.
알츠하이머 협회(Alzheimer’s Association)는 향후 20년간 환자 수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혈액을 통한 조기 예측은 예방 치료 시점 결정, 가족의 재정 계획 수립, 그리고 신약 개발 가속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