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워싱턴— 미국 경제에 ‘파산 경보’가 발령됐다. 글로벌 대기업부터 동네 소상공인, 평범한 직장인 가계에 이르기까지 고물가와 고금리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례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1월까지 집계된 대기업 파산 신청은 총 717건으로, 201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이번 파산 정국은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 ‘무차별적 확산’ 양상을 띠고 있다. 올해 파산 법원에 손을 벌린 기업들은 항공, 식품, 기술, 유통 등 전 분야를 망라했다. 10억 달러 이상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거대 기업들이 리스트의 주를 이뤘다.
스피릿 항공(Spirit Airlines): 누적 부채와 합병 무산으로 인한 경영난
델몬트 푸드(Del Monte Foods): 원가 상승 및 이자 부담 심화
23andMe: 유전자 검사 시장 위축과 수익성 악화
선더(Sonder Holdings): 공격적 확장 후 임대료 부담 가중
클레어스(Claire’s): 오프라인 매장 침체와 부채 상환 압박
옴니케어(Omnicare): 요양 시설 약국 서비스 수요 변화 및 규제 비용
퍼스트 브랜드(First Brands Group): 공급망 문제와 고금리 부채
빙고(Vingroup 관련 자산): 에너지 및 전기차 파트너사 부채 조정
링크토(Linqto): 비상장 주식 거래 시장 위축 및 자금 조달 실패
바다 비타(Badger Meter 관련 설비): 제조 비용 구조 악화
티키 브랜드(Tiki Brand): 소비 심리 위축에 따른 매출 타격
빅 랏츠(Big Lots):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저소득층 구매력 저하
조앤 패브릭(Joann Fabric): 공예 시장 침체 및 부채 구조조정
익스프레스(Express): 패션 트렌드 대응 실패 및 임대료 부담
레드 랍스터(Red Lobster): 프로모션 실패와 운영비 상승
베테랑 파산 전문 변호사들은 “과거에는 가상화폐나 부동산처럼 특정 분야에 파산이 집중되었으나, 지금은 산업 전반에 걸쳐 파편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며 현 상황의 심각성을 전했다.
한편 거대 기업뿐만 아니라 실물 경제의 뿌리인 소기업과 가계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소기업 전용 파산 절차인 ‘서브챕터 V’ 신청 건수는 올해 중순 이후 전년 대비 약 10% 증가했다. 고물가로 인한 운영비 상승과 소비 위축이 맞물린 결과다.
개인 파산 역시 급증세다. 11월 한 달간 개인 파산 신청은 전년 동월 대비 8% 증가한 4만여 건에 달했다. 특히 자산을 청산하는 ‘챕터 7’ 신청이 11%나 늘어난 점은 가계 경제가 회생 불능 수준의 한계 상황에 부닥쳤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연준의 금리 인하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파산이 늘어나는 이유로 ‘누적된 고통’을 꼽았다. 미국 파산 연구소(ABI)의 에이미 콰켄보스 소장은 “치솟은 비용과 빡빡해진 대출 조건, 그리고 지속되는 지정학적 불안이 이미 한계에 다다른 가계와 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계는 2026년 감세 정책 등이 시행되기 전까지 이러한 ‘파산 물결’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콰켄보스 소장은 “부채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파산은 안정을 되찾고 경제적 미래를 재건하기 위한 마지막 통로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선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