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하원 감독위원회(House Oversight Committee)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12일, 억만장자 금융인 제프리 엡스타인과 다른 인물들간의 이메일을 공개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의 미성년자 성범죄 행위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정황을 제기했다.
민주당이 공개한 자료에는 엡스타인이 2011년 측근 기슬레인 맥스웰에게 보낸 이메일과 2019년 저널리스트 마이클 울프에게 보낸 메시지가 포함됐다. 2011년 엡스타인은 맥스웰에게 “트럼프가 내 집에서 피해자(이름 비공개)와 함께 여러 시간을 보냈다”고 썼다. 또 2019년 울프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는 “물론 그는 그 소녀들(girls)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슬레인에게 그만두라고 했다”고 적혀 있다.
맥스웰은 엡스타인의 성매매 조직 공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현재 징역 20년형을 복역 중이다. 울프는 트럼프 대통령 관련 저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포함해 여러 권의 책을 쓴 언론인이다.
하원 민주당 측은 이 이메일들이 엡스타인 재단이 제출한 자료 중 일부라며 현재 의원들이 약 2만 3천여건의 관련 문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하원 전체 감독위원회는 엡스타인 재단에서 제출된 2만여쪽의 자료를 추가 공개했으며 공화당 측은 민주당이 “클릭수를 노린 선택적 유출(cherry-picking)”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공개분에는 이메일 외에도 법정 기록, 증언 녹취, 언론 보도 요약 등이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엡스타인과 절교했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으며 현재까지 범죄 연루 혐의는 제기되지 않았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민주당이 선별된 이메일을 흘려 ‘가짜 내러티브(fake narrative)’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녀는 이메일에 언급된 피해자가 올해 4월 자살한 버지니아 주프리(Virginia Giuffre)라고 지목했다. 주프리는 2000년 여름 17세 생일을 앞두고 트럼프 소유의 플로리다 리조트 ‘마러라고(Mar-a-Lago)’의 스파에서 일하며 엡스타인을 처음 만났지만 트럼프에 대해선 어떤 잘못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회고록에서
“트럼프는 매우 친절했다”고 썼다. 레빗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수십년전 여성 직원들에게 부적절하게 행동한 엡스타인을 마러라고 클럽에서 내쫓았다”며 “이번 의혹 제기는 정부 재개 문제 등에서 민주당의 실패를 덮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라고 주장했다.
CBS는 현재 이메일의 진위 여부를 독자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공개한 이메일 중 하나는 2011년 4월 2일자 엡스타인→맥스웰 발신분이다. 그는 “짖지 않은
개(dog that hasn’t barked)는 트럼프다. ‘피해자 1’은 그와 함께 내 집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그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썼다. 이에 맥스웰은 “그 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이메일(2019년 1월 31일자)에서 엡스타인은 울프에게 “트럼프는 내가 마러라고의 회원이었다고 말했지만 나는 결코 회원이 아니었다. 물론 그는 소녀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슬레인에게 그만두라 했다”고 적었다. 2015년 12월 15일자 이메일에서는 울프가 “CNN이 오늘 트럼프에게 당신(엡스타인)과의 관계를 묻는다고 들었다”고 전하자, 엡스타인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짜둔다면 어떤 게 좋을까?”라고 물었다. 이에 울프는 “그를 스스로 걸려 넘어지게 하라”며 “그가 비행기나 집 방문을 부인하면 당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카드가 생긴다”고 답했다. 당시 트럼프는 이미 대선 출마를 선언(2015년 6월) 한 상태였다.
이번 이메일 공개는 최근 연방의회내에서 ‘엡스타인 관련 기록 전면 공개’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 민주당의 아델리타 그리할바 의원이 이날 취임 선서를 마치면 법무부에 엡스타인 수사기록 공개를 강제하는 법안을 하원 표결에 부칠 수 있게 된다. 표결은 내달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민주당은 셧다운 등에서의 실패를 덮기 위해 ‘엡스타인 사기극(Epstein hoax)’을 다시 들먹이고 있다”며 “공화당은 이 함정에 빠지지 말고 나라를 정상화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썼다.
하원 감독위원회 민주당 간사 로버트 가르시아 의원(캘리포니아)은 성명에서 “법무부는 엡스타인 파일을 즉시 공개해야 한다”며 “위원회는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조사와 압박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덮으려 할수록 더 많은 사실이 드러난다”며 “새로 공개된 이메일은 백악관이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트럼프와 엡스타인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엡스타인의 유산 관리단은 최근 수차례에 걸쳐 의회에 관련 기록을 제출했으며, 감독위원회는 이외에도 전직 법무장관·FBI 국장, 그리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관련 자료도 요청한 상태다. 또한 2000년대 초 엡스타인을 불기소 합의(non-prosecution agreement)로 풀어준 당시 연방검사 알렉스 아코스타 전 노동장관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아코스타는 트럼프 1기 내각에서 노동장관으로 재직했으나 2019년 엡스타인 사건 처리 논란으로 사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