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가을, 밀워키 브류어스가 마침내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탬파베이 레이스를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꺾고 거머쥔 구단 역사상 첫 우승이다. 마지막 아웃카운트와 함께 터져 나온 환호에는 선수들의 기쁨뿐 아니라, 오랜 세월 기다려 온 팬들의 감격도 담겨 있었다.
이번 우승에서 주목할 것은 그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까지 구단이 걸어온 길이다. 대도시 구단보다 제한된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만들고, 실패를 견디며, 다음 세대를 준비해 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밀워키 야구의 역사에는 이별의 아픔이 있다. 오늘날 애틀랜타를 연고로 하는 브레이브스는 한때 밀워키의 팀이었다. 브레이브스가 떠나면서 야구를 잃은 시민들에게 다시 메이저리그를 돌려주기 위해 앞장선 사람이 버드 셀리그였다. 그는 지역 인사들과 함께 재정난에 빠진 시애틀 파일러츠를 인수해 1970년 밀워키로 데려왔다. 훗날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가 된 셀리그의 출발점에는 고향과 야구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었다.
새 팀의 이름은 브류어스였다. 맥주 양조업으로 성장한 도시의 정체성을 담은 이름이다. 오늘의 브류어스는 1969년 출범한 시애틀 파일러츠가 밀워키로 이전하면서 이름을 바꾼 구단이다.
필자는 한국 프로야구 관련 업무를 하면서 셀리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야구에 대한 애정을 행동으로 옮긴 지도력이다. 그는 야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사람을 모으고 기회를 찾아 시민들의 염원을 현실로 만들었다. 오늘의 우승으로 이어진 긴 역사의 첫 장에는 그러한 집념이 있었다.
브류어스는 한국 야구와도 인연이 깊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의 영웅인 ‘불사조’ 박철순은 1980년과 1981년 밀워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다. 한국 야구팬들에게 익숙한 그의 이름은 브류어스를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한다.
삼성 라이온즈의 명수비수였던 김용국 역시 이 구단과 인연을 맺었다. 정동진 감독의 주선으로 미국행에 나선 그는 1997년 지도자 연수를 시작했고, 이듬해 밀워키 산하 싱글A에서 수비와 주루를 지도했다. 한국의 선수와 지도자가 미국 야구를 배우고 도전하던 과정에 브류어스라는 이름이 함께했던 것이다.
물론 밀워키의 역사가 줄곧 영광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1982년 월드시리즈 진출 이후 오랜 기다림이 이어졌고,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브류어스까지 단순한 약체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 이번 정상 등극 이전부터 꾸준히 가을야구에 도전하며 우승의 문을 두드려 왔기 때문이다.
밀워키는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처럼 거대한 시장을 가진 도시가 아니다. 대형 자유계약선수를 계속 영입해 전력을 보강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제한된 자원을 어디에 쓰고, 어떤 선수에게 기회를 주며, 그 가능성을 어떻게 실제 전력으로 바꿀 것인지가 더욱 중요하다.
여기서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선수는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는다. 스카우트가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도자가 약점을 보완해 주고, 구단이 성장할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기록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재능을 알아보는 눈과, 그 재능이 꽃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함께 필요하다.
2005년 구단을 인수해 올해 22번째 시즌을 맞은 마크 아타나시오 구단주 아래에서도 젊은 인재를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방향은 이어졌다. 필자는 이번 우승을 그러한 방향성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결실을 본 순간으로 바라본다. 성적이 흔들릴 때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 판단하는 일도 구단주의 중요한 책임이다.
그 원칙을 현장에서 실행해 온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매트 아널드다. 그는 2015년 부단장으로 합류한 뒤 2020년 단장으로 승진했고, 2022년부터 야구 운영을 총괄했다. 2025년에는 야구 운영 부문 사장 겸 단장으로 승진했다. 조직 안에서 경험을 쌓으며 단계적으로 책임을 이어받은 사례다.
단장은 선수 영입과 트레이드만 담당하는 자리가 아니다. 스카우트와 육성, 선수단 구성과 장기적인 전력 계획을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해야 한다. 특히 밀워키처럼 자원의 제약이 있는 구단에서는 오늘의 전력을 유지하면서 내일의 선수까지 준비하는 판단이 중요하다.
아널드의 경력에서 눈여겨볼 점은 승진 자체보다 그 과정에 있다. 구단은 내부에서 역량을 검증한 인물에게 더 큰 책임을 맡겼고, 아널드는 그 신뢰 속에서 운영의 연속성을 이어갔다. 그는 2024년과 2025년 연속으로 메이저리그 ‘올해의 구단 경영인’에 선정되며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현장의 지도력도 같은 흐름을 보여 준다. 브류어스는 8년간 벤치코치를 맡았던 팻 머피를 감독으로 승진시켰다.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잘 아는 지도자에게 지휘봉을 맡겨,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조직 문화를 이어간 것이다.
이러한 인사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을 키우는 원칙이 선수에게만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와 운영 책임자에게도 성장의 기회를 주었다. 내부 승진의 가치는 익숙한 사람을 기용하는 데 있지 않다. 조직 안에서 검증된 역량에 책임과 권한을 함께 부여하고, 축적된 지식이 다음 단계로 이어지게 하는 데 있다.
한국 프로야구도 이 대목을 깊이 생각해 볼 만하다. 당장의 성적을 위한 전력 보강은 필요하다. 동시에 신인 발굴, 2군의 훈련 환경, 지도자 교육, 부상 예방과 재활, 선수별 성장 계획에 얼마나 꾸준히 투자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어린 선수가 실패했을 때 다시 도전할 기회를 주는 문화도 육성의 중요한 일부다.
모기업의 이미지와 팬들의 기대를 생각하면 구단이 승리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기 성적에 대한 압박이 육성의 시간을 빼앗아서는 곤란하다.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훈련 방향이 흔들리고, 유망주가 몇 차례의 부진만으로 기회를 잃는다면 장기적인 경쟁력을 쌓기 어렵다.
구단이 물어야 할 질문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리 2군에서는 어떤 선수가 성장하고 있는가. 지도자들은 새로운 훈련법을 얼마나 공부하고 있는가. 선수의 발전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현장에서 쌓인 경험은 다음 지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가.
육성에 투자한다고 우승이 자동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좋은 선수를 계속 길러 내는 구단은 다시 도전할 힘을 갖는다. 한 번의 우승을 넘어 여러 해 동안 우승에 도전하는 팀을 만드는 바탕도 거기에 있다.
밀워키의 우승은 야구장 밖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울림을 준다. 사업을 하든, 공동체를 이끌든, 사람을 키우든 성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눈앞의 결과가 더디다고 해서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헛된 것은 아니다. 방향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고치며 하루하루 쌓아 가는 일이 내일의 가능성을 넓힌다.
2026년 월드시리즈 챔피언 밀워키 브류어스에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그들이 들어 올린 트로피에는 선수들의 땀과 지도자들의 노력, 구단의 투자와 팬들의 기다림이 함께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우승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오늘의 승리만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일도 승리할 수 있는 사람과 시스템을 키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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