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 미국에서 출생 시민권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이미 시민권을 취득한 이민자들까지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민자 디아스포라(재외동포)를 중심으로 시민권 박탈(denaturalization) 가능성이 제기되며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연방 대법원이 관련 사건 심리를 앞두고
있어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방 대법원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생 시민권 폐지 시도를 둘러싼 소송인 ‘트럼프 대 바버러(Trump v. Barbara)’ 사건에 대해 오는 4 월 1 일 구두변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의 3 월 정기 심리 일정(3 월 23~25 일, 3 월 30 일~4 월 1 일)에 포함된 8 건 중 하나다. 같은 일정에서는 선거법 관련 주요 사건인 ‘왓슨 대 공화당전국위원회(Watson v. Republican National Committee)’도 함께 다뤄진다.
쟁점이 된 행정명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5 년 1 월 20 일 서명한 것으로, 부모가 불법 체류자이거나 임시 체류 신분일 경우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명령은 아직 시행되지는 않은 상태다.
소송을 제기한 측은 이 행정명령이 연방 대법원의 기존 판례와 헌법 수정 제 14 조에 명시된 출생 시민권 조항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 제 14 조는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하고 그 관할권에 속하는 모든 사람은 미국과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 일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 브리핑에서도 이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다. 전문가들은 출생 시민권 제한 논의가 단순한 이민 정책을 넘어, 기존
시민권자의 지위까지 흔들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인 겸 시민권 운동가 헬렌 지아는 “출생 시민권 제한은 미래뿐 아니라 과거에도 적용될 수 있다”며 “이미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미국 정치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정책 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점도 강조됐다. 플로리다국제대 에두아르도 가마라 교수는 쿠바계와 베네수엘라계 미국인을 예로 들며 “이민 정책의 수혜자였던 집단이 동시에 강경 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모순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최근 정책 변화로 신규 이민자와 가족이 추방 대상이 되면서 공동체 내부의 불만과 분열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베네수엘라계 미국인 사회에서는 시민권자와 임시보호신분(TPS) 대상 가족을 둔 이들 간 입장 차이가 두드러지고 있다. 일부 시민권자들은 강경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가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자 정치적 입장을 재고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란계 미국인 사회 역시 모국 정치 상황과 연계된 정치적 선택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정권 교체를 기대하며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디아스포라가 미국의 외교·국내 정책에서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되는 동시에, 그 결과를 직접 감당해야 하는 집단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법원 심리는 출생 시민권의 범위와 헌법 해석을 둘러싼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판결 결과에 따라 시민권 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민자 사회뿐 아니라 미국 정치 전반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