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며 소망, 사랑, 기쁨과 평화의 촛불을 하나씩 밝혀 갑니다. 빛으로 오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1년 동안 미국 사회는 서류미비자 단속 강화로 인한 갈등과 정치적 대립, 그리고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큰 불안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엊그제 트럼프 대통령은 소말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18개 국가 출신 영주권자들의 자격을 재조사하겠다고 발표해 많은 이민자들에게 또다시 두려움의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코로나 시기 아시안 혐오범죄가 급증했던 것처럼, 세상이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은 쉽게 ‘희생양’을 찾으려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당시 유대 사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헤롯 왕은 메시아 탄생 소식을 듣고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아기 예수와 부모는 이집트로 피신해야 했고, 이 사건은 역사 속에 ‘무죄한 아기들의 학살(The Massacre of the Innocents)’로 기록되었습니다.
대강절의 기다림은 이러한 인간의 두려움과 불안을 내려놓고, 성령께서 주시는 평화로 마음을 채우는 시간입니다.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배우는 영적 훈련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작은 선물 하나에도 설레며 약속된 기쁨을 향해 눈을 반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삶의 무게와 걱정으로 그 순전한 기다림을 잃어버렸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기다리는 행복’에서 “기다림에는 희망이 숨어 있고, 희망은 우리를 더 견디게 하는 힘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다림은 절망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하며, 어둠 가운데서도 빛을 찾게 합니다.
아기 예수는 지극히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낮은 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대강절의 기다림은 ‘작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 가는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다림 속에 두려움을 살아가는 이웃을 향한 긍휼이 있는지, 억눌린 자들을 기억하는 마음이 있는지,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것은 단순히 ‘나의 문제 해결’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평화는 우리의 마음이 예수의 마음을 닮아갈 때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대강절은 우리의 삶과 세상 속에 소망과 사랑의 빛을 밝히고, 평화를 위해 섬기는 계절입니다.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대강절 동안 어려운 환경에 놓인 어린이들을 위해 동전을 모아 왔습니다. 성탄 헌금 역시 구제와 선교에 사용되며, 지난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 아동들과 튀르키예 지진 피해자들을 돕는 데 쓰였습니다. 최근 UMCOR (연합감리교 재해대책위원회)로부터 가자지역 어린이들을 돕는 선교 프로젝트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해 사역하는 선교사로부터도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에 함께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있는 동전을 이번 대강절에 가자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헌금으로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헌금은 이 시대 고통받는 지극히 작은 이웃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소망과 사랑의 빛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사랑과 섬김이 곧 예수님께 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의 마지막 길이 이것으로 판가름 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강절의 기다림 속에서 작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주님의 평화를 이루는 빛을 함께 밝혀 나가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