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14세가 미국 정치 현안에 직접 목소리를 냈다. 미가톨릭 시카고 대교구가 낙태권을
지지해온 딕 더빈 연방상원의원(민주당/일리노이)에게 이민 정책 기여를 이유로 ‘평생 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 수여를 결정한 것과 관련,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이 일자 교황이 신중하면서도
분명한 지지를 보낸 것이다.
교황은 지난달 30일, 기자들과 만나 “더빈 상원의원이 40년간의 의정활동에서 어떤 전체적인 일을
해왔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나는 어려움과 긴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교회 가르침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시카고 대교구와 이민 사목국은 오는 11월 3일 열리는 행사에서 더빈 의원에게 공로상을
수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교황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블레이즈 수피치 시카고 대주교는 “더빈
의원이 상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며 “유감스럽지만 그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 상은 낙태 문제가 아니라 더빈 의원의 이민 개혁 기여와 이민자들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평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토머스 파프로키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교구장은 “충격적”이라며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혼란스럽게 하고 큰 스캔들을 야기할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파프로키
주교는 더빈 의원에게 성체성사를 거부해온 인물이다. 또 다른 9명의 주교들도 공개적으로 반대
성명을 내며 “교회의 낙태 교리를 배신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교황은 정치인을 단일 이슈로만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낙태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사형을 지지한다면 진정으로 ‘프로-라이프(pro-life)’라 할 수 없다”며 “낙태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미국내 이민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는데 동의한다면 그것도 생명 옹호인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최근 2026년 연방상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더빈 의원은 이민자 권익을 꾸준히 옹호해온
대표적 정치인이다. 그는 미성년자로 불법 입국한 청년들에게 합법적 지위 획득의 길을 열어주는
‘드림법안(DREAM Act)’의 공동 발의자이기도 하다.
일리노이 출신인 교황은 시카고 피자와 화이트삭스 야구팀에 대한 애정을 밝히며 현지인들의
친근감을 얻어왔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미국 가톨릭교회내에서 신학과 정치적 당파성이 충돌하는
긴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교황은 “이 문제들은 매우 복잡하며 어느 누구도 모든 진실을 다 갖고
있지는 않다.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존중 속에서 인간으로서, 미국인으로서, 일리노이 주민이자
가톨릭 신자로서 윤리적 문제들에 함께 접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각 사안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명확하다. 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함께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