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장관 피트 헥세스가 레이건 국방포럼에서 내놓은 발언은 미국 군사·외교 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한다. 그는 미국이 그동안 추구해온 ‘이상적 유토피아주의’를 공식적으로 종식하고, 국가 이익을 중심으로 한 ‘강경 현실주의’로 전환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는 냉전 이후 미국이 유지해온 글로벌 개입주의에서 벗어나 서반구 중심의 영향권 전략을 강화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헥세스의 연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민주주의 전파, 개입주의, 정권교체, 정의되지 않은 전쟁, 도덕적 명분의 군사 개입”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식 국제주의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겠다는 점이다. 미국은 앞으로 자국의 실질적 이익이 직접적으로 걸린 영역, 즉 미국과 가까운 서반구와 국경 관리, 마약 카르텔 대응에 군사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카리브해에서 진행 중인 마약 운반 보트 격침 작전과 관련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헥세스는 “마약을 실어오는 자는 찾아내서 가라앉히겠다”며 국제법 논란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는 미국이 안보 위협을 ‘전쟁 행위’로 규정하고 사실상 무력 사용 기준을 대폭 완화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군의 국경 방위 임무 확대 역시 미국 안보전략의 중심축이 해외에서 국내로 이동했음을 상징한다.
이번 발표는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이 다극화된 세계질서에 적응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중국에는 태평양 영향권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유럽에는 “스스로 방위 책임을 강화하라”고 압박한다. 한편으로는 유럽의 민족주의·정체성 강화 움직임을 지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타국 내정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줄이겠다고 말하는 모순된 메시지도 드러난다.
결국 미국은 글로벌 경찰 역할에서 물러나 ‘우리의 지역은 우리가 지킨다’는 신(新) 몬로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이는 세계 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각국이 자국 중심의 생존 전략을 강화하는 흐름과 맞물린다. 동맹국들은 미국의 전략 변화가 자국 안보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특히 한국 역시 미국의 우선순위 변화 속에서 한반도 안보 구조의 지속 가능성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군사전략은 지금 확실히 변하고 있다. 그 변화는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라, 세계 안보 지형 자체를 다시 그리는 ‘대전환’이다. 동맹국들의 대응력과 전략적 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