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며 감소하는 뇌 화학물질의 수치를 인지 훈련을 통해 높일 수 있다는 첫 유력한 인간 대상 증거가 제시됐다.
공영라디오(NPR)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10주간의 연구에서, 하루 30분씩 집중적인 인지 훈련을 실시한 결과 주의력과 기억력에 관여하는 뇌 영역의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acetylcholine) 수치가 평균 2.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몬트리올 맥길대 신경과학자 에티엔 드 빌러스-시다니 교수는 “큰 변화는 아니지만 노화로 인해 10년마다 약 2.5%씩 감소하는 수치를 감안하면 의미있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즉, 이 뇌 영역만 놓고 보면 인지 훈련을 통해 약 10년의 노화 효과를 되돌린 셈이다.
이번 결과는 자극적인 환경이 특정 신경전달물질 수치를 높인다는 동물실험 결과와 맥을 같이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도 인지 훈련이 사고력과 기억력을 개선할 수 있음을 시사해왔다. 이 연구는 미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NIH)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으며 현재 Lumosity, Elevate, Peak, CogniFit, BrainHQ 등 온라인 인지훈련 프로그램이 급속히 확산되는 가운데 나왔다. 맥길대 몬트리올 신경연구소의 인지장애 클리닉을 이끌고 있는 빌러스-시다니 교수는 “이런 프로그램의 실질적 효과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인지 능력의 일부 지표에서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실제로 뇌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변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고 설했다.
이에 연구팀은 인지 수행과 밀접하게 연관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acetylcholine) 수치가 정신적 훈련을 통해 높아질 수 있는지를 직접 검증하기로 했다. 아세틸콜린은 대체로 중년 무렵부터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하며,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서는 그 감소폭이 훨씬 크다. 연구팀은 65세 이상 건강한 성인 92명을 모집해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쪽은 솔리테어나 캔디 크러시 같은 일반 컴퓨터 게임을 하루 30분씩 즐겼고, 다른 쪽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프로그램인 BrainHQ의 인지 훈련 과제를 같은 시간 동안 수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화면에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체의 유형과 위치를 기억하도록 하여 사용자의 주의력과 정보처리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판단과 오류 인식에 중요한 뇌 영역)의 아세틸콜린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특수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기법을 사용했다. 아무 변화도 못 찾을 것이라 생각했던 연구진의 예상과는 달리, 일반 게임을 한 참가자들의 아세틸콜린 수치는 변함이 없었지만 인지 훈련을 한 그룹에서는 유의미한 상승이 관찰됐다. 또한 기억 형성에 핵심적인 해마(hippocampus)를 포함한 다른 뇌 영역에서도 수치 상승이 확인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아세틸콜린은 단순히 신경 신호를 전달하는 것 이상을 하며 이 물질은 학습, 기억, 주의력에 영향을 미치는 뉴런의 작동 방식을 조절한다. 예컨대 멀미약 스코폴라민(scopolamine)을 고용량으로 복용하면 아세틸콜린의 작용이 차단돼 뇌 기능이 혼란스러워진다. 신경 조절 기능이 차단되면 사람은 제대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종의 섬망 상태에 빠지지만, 반대로 아세틸콜린이 조금만 늘어나도 노년층의 기억력과 사고력에는 “깊고 뚜렷한 효과”가 나타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빌러스-시다니 교수는 “초기 알츠하이머 치료제들이 바로 이 아세틸콜린 수치를 높여 증상을 완화시켰다”면서 “이제는 집중적인 뇌 훈련이 비슷한 효과를 내고 인지 저하를 늦출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부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