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미국의 소비자 물가가 하락세를 유지했으나 여전히 목표치를 상회했다. 이와 동시에 미 법무부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대한 형사 수사를 공식화하면서, 미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둘러싼 유례없는 정면충돌이 벌어졌다.
미 노동통계국은 13일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11월과 동일한 수치이자 2025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연준의 물가 안정 목표치인 2%에는 여전히 도달하지 못했다. 특히 쇠고기(15.5%)와 커피(19.8%) 등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며 서민들의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계란 가격은 전년 대비 20.9% 하락하며 큰 폭의 진정세를 보였다.
물가 지표 발표와 맞물려 미 법무부는 파월 의장에게 대배심 소환장을 발부하며 형사 수사에 착수했다. 이번 수사는 약 25억 달러(한화 약 3조 3,000억 원) 규모의 연준 본부 건물 개보수 프로젝트와 관련되어 있다. 당국은 파월 의장이 지난해 6월 의회 증언에서 공사비 증액 사유와 사치성 시설 유무에 대해 허위 진술을 했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연준 공식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공개한 비디오 성명에서 이번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번 수사는 연준이 대통령의 기호가 아닌 경제 데이터에 근거해 금리를 결정한 데 대한 보복성 조치”라며 “건물 개보수 문제는 금리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치적 압박을 위한 구실(Pretext)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연준의 독립성을 둘러싼 논쟁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공화당 내 온건파인 톰 틸리스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이번 수사는 연준의 독립성을 끝내려는 시도”라며 법무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전직 연준 의장들과 경제학자들도 성명을 통해 중앙은행에 대한 사법적 공격이 미국 경제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 시장은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 혼조세를 보였다. 주요 주식 지수는 소폭 상승 마감했으나, 연준의 정책 통제력 약화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몰리며 국채 수익률은 상승 압력을 받았다. 행정부와 중앙은행 간의 유례없는 법적 분쟁이 향후 금리 경로와 미국 경제 정책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선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