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자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벌어진 초유의 대낮 절도 사건으로 충격에 빠졌다.
일요일인 19일 대낮 단 7분 만에 프랑스 왕실의 상징인 ‘왕관 보석’ 9점이 도난당했기 때문이다.
NBC 등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박물관을 넘어 프랑스 국민 전체가 피해자가 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국가의 문화유산을 훼손한 심각한 범죄”라며 긴급 대응에 나섰다.
당국에 따르면, 범인 4명은 이날 아침, 평소처럼 관광객이 오가는 루브르 복도에서 놀라운 속도로 범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파리의 좁은 아파트에서 가구를 옮길 때 흔히 쓰는 ‘몬트뮈블(monte- meubles)’이라는 승강 바스켓 트럭(a truck mounted with a basket lift)을 이용했다. 트럭을 루브르 외벽에 대고, 르네상스 양식의 갤러리 ‘아폴롱관(Galerie d’Apollon)’ 발코니까지 올라간 뒤 절단 도구로 유리창을 잘라냈다.
이후 직원들을 위협하며 2개의 진열장을 부수고 왕관, 목걸이, 브로치 등 나폴레옹 3세 시대 황후 외제니(Eugénie)의 유품을 포함한 귀중품 9점을 훔쳤다.
범행은 박물관 개장 직후에 벌어졌고 일부 관광객은 형광색 조끼를 입은 용의자가 진열장 앞에서 행동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기도 했다.
수사관들은 범인들이 왜 6천만 달러로 평가되는 140캐럿짜리 리전(Regent) 다이아몬드를 건드리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들이 조금만 더 이동했다면 ‘모나리자’가 걸린 방에 닿을 수도 있었다.
도둑들은 범행 직후 2대의 스쿠터를 타고 도주했지만 도중에 2점의 유물을 떨어뜨렸고 그중 하나인 외제니 황후의 왕관은 파손된 채 현장에서 발견됐다. 이 왕관만 해도 수천만 유로의 가치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알렉상드르 지켈로 프랑스 최대 경매사 드루오(Drouot) 대표는 “그것조차도 가장 중요한 유물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술범죄 전문가들은 도난품의 대부분이 너무 유명해 시장에서 팔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결국 도둑들이 보석을 분해하고 금속을 녹여 판매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미술품 탐정 아서 브랜드는 “경찰이 보석이 녹기전에 찾을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뿐이다. 이번 사건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지적했다.
절도사건 직후 루브르 박물관은 19일과 20일 모두 폐쇄됐고 현장 주변은 혼란 속에 관광객들이 긴급 대피했다.
프랑스 언론과 정치권은 이번 사건을 “국가적 굴욕”이라 규정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것은 우리 역사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에 대한 공격”이라며 “유물을 반드시 회수하고 범인을 법의 심판대에 세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문화부와 내무부는 긴급회의를 열어 전국 문화시설의 보안 체계를 전면 점검하고 강화하기로 했다.
제라르 다르마냉 법무장관은 “이번 사건은 프랑스의 이미지를 손상시킨 부끄러운 실패다. 국민 모두가 도둑맞은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극우 성향의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RN) 대표는 “국가 기능의 붕괴가 낳은 치욕”이라며 마크롱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절도 사건을 넘어, 마크롱 정부가 긴축 정책과 공공서비스 축소로 비판받는 사회적 불만과 맞물려 프랑스의 위기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문화노조 SUD는 “보안 인력 축소와 장비 예산 삭감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루브르는 이번이 처음 도둑의 표적이 된 것이 아니다. 1911년에는 이탈리아 출신 직원 빈첸초 페루자가 ‘모나리자’를 훔쳐 세계적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최근에도 프랑스 각지 박물관에서 금괴, 도자기 등 고가 예술품이 잇따라 사라졌다.
파리 검찰청의 라우르 베쿠오 검사장은 “만약 특정 수집가의 주문에 따른 범행이라면 유물이 원형 그대로 회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면, 이번 보석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